염색장이의 딸. 베틀에 실밥 대신 탯줄을 먹이고픈 처녀.
그 시대 내가 나임을 증명할 수 있는 법은 베틀 앞에 앉는 것뿐이었다. 그것이 나를 가장 비대하게 차지하고 있었고 종종 나의 이름을 대신했다. 그러나 인간은 단일한 존재 증명에 의존하는 것으론 건강히 살 수 없었다. 하여 실만 뽑는 것으로도 존재 의의에 충분히 충실한 존재가 되었을 때 나는 얼마나 희열을 느꼈는가. 이제 영원히, 내가 가장 잘하는 일만 하며 살 수 있어. 사실 나는 아테나와 거래를 하였다. 먹지도 자지도 쉬지도 않고 그저 실질만 해대길 원했다. 그렇지 않을 때 나는 그저 아라크네일 뿐이었으니까. 한낱 아라크네 말이다. 신전 주변의 올빼미를 죄 잡아다 죽였다. 어느 하난 산채로 깃털을 뽑아 베에 기워다 붙였다. 여신이 내려왔고 나는 제안했다. 인간사에 기록될 일화와 유명세를 줄 테니 나를 거미로 만들어 달라고. 기록을 먹고 사는 신은 흔쾌히 수락했다. 왜 그런 존재가 되고자 하는지 모르겠다는 일말의 경멸과 함께. 그렇게 나는 인간으로부터 해방되었다.
여신의 벌전 따윈 두렵지 않아. 하물며 거미가 된다 한들 실로 자아낼 수 있다면 실로 내가 두려워할 것은 나 자신에 불과하지. 솜씨를 잃는 것은 거드름 피워댄 나의 탓이며 또한 잃은 내가 비참해지는 것도 나의 몫이니. 미물에 귀 기울이지 않은 여신은 영영 모를 테다.
영원히 베를 짜게 된 거미가 그 모든 두려움으로부터 어떻게 해방되었는지!
출시일 2025.10.04 / 수정일 2025.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