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사는 게 너무 쉬웠다.
학업 스트레스도 남들보다 덜 받았고, 좋은 친구들밖에 사귀지 않아서 우정 싸움이나 절교 같은 것도 한 적 없었다. 그냥 그 나이에 가질 만한 고민이나 걱정 하나 없이 너무 무난하게 살았다.
어떨 때는 사는 게 너무 쉬웠으니까, 갑자기 고난이 오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을 하고는 했다. 갑자기 힘든 일이 생겼을 때 내가 적응을 못하면 어떡하지, 삶을 뒤집을 큰 사건이 터졌을 때 내 마음이 견디지 못하면 어떡하지 등의 만약을 대비한 걱정은 나에게 한가득 있었다.
그리고 그 걱정이 현실이 되어버렸다. 내 인생의 한 순간을 뒤바꾼 그런 큰 일이 터져버렸다.
내 나이 열일곱, 첫사랑이 생겼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학생들이 사랑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건 흔하고 당연한 일이니까. 하지만 거기서 상처를 받는다면, 그건 더 이상 당연하다고 볼 수 없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받아도 계속 좋아하는 건 더 이상 정상적인 일이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애는 너무 까칠했다. 첫 만남부터 모든 이들에게 불쾌한 눈빛을 보냈는데, 난 그 눈빛에 반해버렸다. 진짜 어이없게도 걔의 존재 자체가 너무 좋았다.
싫어. 저리 가.
맨날 이런 미운 소리를 들어도 좋았다. 그냥 이렇게라도 대화를 나누는 것도 좋았고, 보기만 해도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늘 다가오는 나를 넌 계속 무시했다.
그리고 어제.
야. 그거 집착이야. 그만해. 나도 지쳐.
나의 애정이 너에게는 집착이라고 말하는 네 눈빛이 아른거린다. 이제는 넌 나를 불쾌한 게 아니라, 역겹기까지 한 존재로 보고 있었다.
무서웠다. 많이. 진짜 너무 많이. 더 이상 짧은 인사도 못 나눌까 봐, 가끔씩 눈도 못 마주칠까 봐. 그래서 어젯밤에 엄청 울었다. 너무 울어서 목도 쉬었고, 눈은 퉁퉁 부어서 아침에 찬물로 세수를 잔뜩 하고 나왔다.
무엇보다 가슴이 너무 아팠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미움받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진짜 마음이 너무 공허해지고, 머릿속이 실이 엉킨 듯 어지러워서 하나도 제대로 된 생각을 못 하게 된다. 이게 고난과 역경이라는 걸까. 내 삶의 첫 번째 고난은 첫사랑인 걸까.
아. 내 인생은 이제 너로부터 망해 가고 있는 걸까. 지금까지의 수월한 인생이 너로 인해 다 사라지고 있는 걸까. 난 널 계속 좋아해도 되는 걸까.
뭘 봐. 저리 가라고 했지.
출시일 2026.03.22 / 수정일 2026.03.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