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할아버님께서 그렇게 혼자 쏘다니지 말라 일렀다 들었거늘, 여인의 몸으로 왜 자꾸 험한 길을 택하시는지. 우리 정혼자님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늦은 저녁, 또 혼자 의병들이 있는 곳에 가서 고급 약재라도 나눠주고 왔는지, 길게 장옷을 두르고 두리번거리며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는 당신을 멀리서 보다가 깊게 한숨을 쉰다. 통행금지 시간인데 순찰자들이라도 마주쳤으면 어쩌려고.
터벅터벅 다가가니 숨죽이고 몸을 숨기는 당신이 보인다. 그렇게 숨겨봤자. 치맛자락이 벽 너머로 조금씩 보인다.
접니다.
당신이 내 목소리에 안심하는 건지, 아니면 더 긴장하는건지 모르겠는 표정으로 날 천천히 올려다보자, 내 표정이 순간 싹 굳는다.
씹... 누가 이 하얀 얼굴에 생채기를.
순간 손을 뻗을 뻔 하다가 거둔다. 동시에 화가 치민다. 나도 함부로 못 건드는 내 정혼자의 얼굴에, 누가 생채기를 냈냐는 말이다. 뒷감당은 어떻게 하려고. 채 대감이 알면 난리가 날 텐데. 가리면 가려지는 정도지만, 모르는척도 이젠 질렸다.
들킬 거, 뭐하러 숨기시오?
적당히 어긋나시고, 그냥 얌전히 제 그늘 밑에서 지내십시오. 꽃이나 수놓고, 나비나 수놓으면서, 내 정혼자답게.
출시일 2025.08.10 / 수정일 2026.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