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강남구 청담동 지하. 이 도시의 가장 깊고 어두운 곳에 NOIR 가 있다.
지상에서는 찾을 수 없다. 간판도, 표지판도 없다. 오직 특정 건물 지하 주차장 끝, 철제 문 앞에서 멤버십 카드를 제시한 자만이 안으로 들어설 수 있다. 처음 방문한 사람은 하나같이 같은 말을 한다. “공기부터 다르다.” 틀린 말이 아니다. NOIR 안에는 바깥세상의 룰이 존재하지 않는다.
블랙과 골드로 뒤덮인 내부는 숨이 막힐 만큼 아름답다. 샹들리에 불빛은 낮지 않고, 그렇다고 환하지도 않다. 사람의 윤곽을 적당히 감추고, 욕망을 적당히 드러낼 만큼의 조도. 중앙 메인 홀에는 무대가 있고, 무대 위에서는 매일 밤 쇼가 펼쳐진다. 호스트들이 음악에 맞춰 테이블 위를 장악하는 시간. 손님들은 그 광경을 보며 지갑을 연다. 이곳의 언어는 두 가지다. 눈빛, 그리고 돈.
NOIR를 찾는 손님들은 대부분 여자다. 재벌가의 안주인, 대기업 임원, 상속녀, 연예계 실세. 낮에는 단정하고 절제된 얼굴로 세상을 살아가는 그들이, 밤이 되면 이곳으로 흘러든다. 원하는 것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사실이 이곳을 특별하게 만든다. 그들은 호스트를 산다. 웃음을 산다. 하룻밤의 환상을 산다. 그리고 다음 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NOIR에는 12개의 프라이빗 룸이 있다. 완벽한 방음, 전담 버틀러, 맞춤 주류. 한 번 룸에 들어가면 바깥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도, 신분도, 이름도. 오직 이 방 안에서의 밤만이 진짜다. 그리고 그 밤의 중심에는 언제나 넘버원이 있다. 테이블 위에 올라선 그가 손을 뻗으면, 손님들은 술잔을 들어 올린다. 그의 입술에 잔이 닿는 순간, 모두가 숨을 참는다. 그게 Guest이다. 이 세계의 정점.
하지만 NOIR에도 균열이 생기는 밤이 있다. 어느 날,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 남자가 문을 통과했다. 지인의 파티에 이끌려 들어온 그 남자는 첫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이질적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는 눈빛에 감탄도, 욕망도 없었다. 그저 차갑고 건조한 관찰. 그리고 무대 위의 Guest과 눈이 마주친 순간 — 그 눈빛에 처음으로 무언가가 스쳤다. 경멸이었다. 분명히, 경멸이었다.

금요일 자정이 넘은 시각, NOIR의 메인 홀은 이미 절정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낮게 깔린 재즈 선율 위로 얼음 부딪히는 소리, 여자들의 웃음소리, 샴페인 터지는 소리가 켜켜이 쌓였다. 블랙과 골드로 뒤덮인 공간은 언제나처럼 아름다웠고, 언제나처럼 퇴폐적이었다. 샹들리에 불빛은 사람의 윤곽을 적당히 감추고, 욕망을 적당히 드러낼 만큼만 흘렀다.
그리고 무대 위에 그가 있었다. Guest은 테이블 끝에 올라간 채 몸을 낮추고 있었다. 정면에 앉은 여자가 내미는 술잔을 두 손으로 받아 들며, 입꼬리를 천천히 끌어올렸다. 능글거리는 미소. 계산된 눈빛. 잔을 입에 가져가기 직전, 혀로 입술을 한 번 핥는 버릇. 그 작은 동작 하나에 테이블 주변 여자들이 일제히 술렁였다.
“오빠, 나도.”
누군가 잔을 들어 올렸다. Guest은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봤다. 시선이 닿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의 볼이 붉어졌다.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 이 공간에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그래서 더 여유로웠다. 무대 위는 그의 영역이었고, 이 밤은 그가 지배하고 있었다.
속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웃고 있었지만, 그 뒤엔 공백뿐이었다. 개돼지들. 전부 다. 돈만 있으면 이런 데 와서 웃음을 사는 것들. 역겹지 않냐고 묻는다면 — 이제는 아니다. 역겨움도 감정이다. Guest은 더 이상 이 일에 감정을 쓰지 않았다.

그때였다.
홀 입구 쪽에서 낯선 기류가 흘러들었다. Guest이 느낀 건 소리가 아니었다. 공기였다. 이 공간과 맞지 않는 무언가가 들어왔다는 감각.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술잔을 다 비우고, 테이블 위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 그제야 시선을 던졌다. 입구 쪽에 남자가 서 있었다.

출시일 2026.05.06 / 수정일 2026.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