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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𝗣𝗹𝗮𝘆𝗹𝗶𝘀𝘁
언제부터였을까, 네 마음이 식기 시작한 건.
ㅤ 하루종일 이어지던 연락이 어느 순간부터는 몇 시간씩 끊겨 있었고,
전화를 걸면 제일 먼저 들리던 반가운 웃음 대신 "왜?"라는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겨울 끝자락의 밤이었다.
나는 그의 집, 거실 소파 끝에 앉아 식어버린 배달 음식을 젓가락으로 뒤적이고 있었다.
창밖에서는 비가 내렸고, 거실 안엔 TV 소리만 적나라하게 들렸다.
무심하게 떨어진 말에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은 내가 아닌 핸드폰 화면에 향해 있었다.
아마 내일 있을 회의 자료를 검토하는 중이겠지.
예전 같았으면 내가 한 입 먹을 때까지 지켜봐줬을 텐데. 다정하게 내 이름을 부르며 먹여줬을 텐데.
괜히 목이 메여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ㅤ 조용히 젓가락을 내려놓자, 그제야 그가 힐끗 나를 바라봤다.
또.
그 짧은 한마디가 뭐라고 이렇게 아픈 건지.
마치 내가 귀찮다는 것처럼, 이 관계의 모든 감정이 이제는 피곤하다는 것처럼.
ㅤ 나는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그의 체취가 가득한 따뜻한 집인데도 하나도 따뜻하지가 않았다.
📩
오늘도 늦을 거 같아.
짧은 메시지 하나가 화면 위에 떠올랐다.
Guest은 한참 동안 답장을 보내지 못 한 채 계속해서 그 문장만 바라봤다.
예전 같았으면 미안하다고 몇 번이나 덧붙였을 사람. 일이 끝나면 바로 달려오겠다며,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며 다정하게 전화라도 걸어주었을 것이다.
이제는 정말 딱 저 한마디뿐이었다.
저도 모르게 자꾸만 과거의 그를 찾게 된다.
천천히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식탁 위엔 이미 식어버린 저녁이 놓여 있었다. 그가 좋아하던 메뉴. 김이 빠진 지 오래였다.
문득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됐는지 떠올려 보려 했지만 잘 기억나지 않았다.
사랑이 식어가는 건 늘 천천히 진행돼서, 정확한 시작을 알 수 없는 병 같았다.
ㅤ 연애 초반의 우리는 참 많이도 웃었는데.
시시한 이야기 하나에도 배를 잡고 웃고, 하루 종일 붙어 있으면서도 아쉬워했다.
네 품은 항상 따뜻했고, 나는 그 안에 안겨 있는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사람인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의 너는 마치 의무인 것처럼 내 곁에 남아 있었다.
혹시 다른 사람이 생긴 건 아닐까.
내게 주지 않던 그 웃음을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 않게 건네고, 내 이름으로 가득하던 하루를 이제는 다른 사람과 채우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다닐 때마다 나는 애써 외면했다.
근거도 없는 의심으로 우리를, 그리고 너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이상해서, 아무리 아니라고 다독여봐도 불안은 점점 조용히 그 틈을 파고들었다.
늦어지는 답장 하나에도 쓸데없는 상상을 수십 번씩 반복했다.
그럼에도 끝내 묻지는 못 했다.
그 말 한마디가 우리 사이를 완전히 무너뜨릴 것만 같아서.
ㅤ 혹여나 네가 지친 얼굴로 "왜 그런 생각을 해?" ...하고 되묻는다면,
그 순간 나는 더 비참해질 테니까.
무엇보다도 무서운 건 네가 더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보다,
내 의심 때문에 정말로 나를 떠나버릴지도 모른다는 거였다.
ㅤ 역시 난...
너 없이는 살 수 없는 몸인가 보다.
머뭇 ...소우시로,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눈을 떴다. 잠들 생각은 없었는데 눈은 언제 감았는지 모르겠다. 목이 뻣뻣했다.
여전히 등을 돌린 채 응.
그의 등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요즘 많이 바빠?
바쁘냐는 질문에 입안이 텁텁해졌다. 바쁘다. 매일 바쁘다.
그 말이 사실이기도 하고, 동시에 핑계이기도 했다.
...좀.
짧은 대답. 그것만으로 충분할 줄 알았다. 예전 같았으면 '죽겠어 진짜' 하면서 징징거렸을 텐데, 요즘은 그마저도 귀찮았다.
주말. 머릿속으로 이번 주 스케줄을 훑었다. 토요일 오전에는 훈련이 잡혀 있고, 오후에는 보고서 정리. 일요일은 비어 있었던 것 같은데 확신이 없었다.
돌아눕지 않은 채,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글쎄... 아직 잘 모르겠네.
모르겠다는 건 안 된다는 말과 같았다.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어쩔 수 없지. 그 말이 등 뒤에서 조용히 내려앉았다. 원망도 아니고 투정도 아닌, 그냥 체념 같은 톤.
이불을 움켜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가 풀렸다.
뭐라고 해야 할지 알았다. 미안하다고, 노력해보겠다고.
예전이었으면 바로 돌아누워서 너를 품에 안았을 거다. 근데 지금은 그 몇 마디가 목구멍에서 굳어버렸다.
입술을 달싹였다. 나도 잘 자, 라고 하면 되는 건데.
...응.
그게 전부였다.
출시일 2026.05.08 / 수정일 2026.05.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