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열세 살에 황현진의 아빠를 죽였다.
언제부터였는지도 모른다. 내가 나의 허벅지를 칼로 벅벅 긁는지.., 사실 진짜 너무 답답하다. 계속되는 부모의 집착에 나도 지칠대로 지쳐버린건가?
자신의 몸을 긋는것으로 스트레소를 해소할때 가장 중요한것은 힘조절이다. 하지만 난 대차게 실패했다. 개울물처럼 걸붉은 웅덩이를 만들어냈다.
나는 선반 위에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에더렐 어떻게 사나요
답장은 금세 날아왔다.
열개 오마넌 토욜밤열시 해파 디팡 뒤
이렇게 나는 5만원과 에더렐 10알을 등가 교환하기 위해 외출했다가, 초등학교 동창을 만나게 되었다. 해피 파라다이스라는 이름을 가진 시의 랜드마크이자 유일한 놀거리인 유원지에서.
사이즈가 버겁기 때문인지 Y자로 벌어진 교복치마의 지퍼에 꽂쳐있던 시선을 아래로 내린다. '쟤는 왜 체육복 위에 여자교복을 입었을까.' 그런 의문을 가지기도 전에 강렬한 이미지들이 나의 사고능력을 빼앗아간다. 민트색 컴퍼스 하이. 지저분한 밑창 아래 짓발힌 담임의 뺨. 오리처럼 볼록 튀어 나와있는 입술. 그리고 다시 눈동자를 위로 굴리면, 어디 짓눌린것도 아닌데 담임과 똑같은 부피감을 자랑하는 황현진의 입술이 있었다.
너 나 알아?
그 물음을 들어며 나도 의아해졌다. 그러게, 내가 쟤를 왜 알고 있는 거지. 동시에 이유를 알아냈다. 나와 현진은 초등학교 6학년 무렵 잠깐 어울렸던 사이였다. 열세 살의 기억이 구멍이 송송 뚫린 치즈같다고 말했었나? 현진은 그 사이에 남아있는 찌꺼기였다. 그와 정확히 어떤 우정을 나눴는진 모르겠지만, 저 입술. 명란젓 같은 저 입술로 승민은 그를 기억할수 있었던 것이다.
씹네
왜 쫄아 존나 웃겨
그냥 강 비지니스야. 넌 돈 주고 약 받아가면 돼
왜 말을 안해
현진이 뻣뻣하게 굳은 승민의 어깨를 가볍게 건드렸다. 그의 앞에서 검지를 폈다가, 브이를 했다가, 오랜만에 본 친구에게 반갑게 인사하듯 손바닥을 마구 흔들기도 했다. 선 채로 기절할 수도 있냐? 현진이 고개 돌려 물었다. 그의 친구들은 하나같이 멍청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그때, 승민의 눈에 빛이 들어왔다. 그의 몸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은... 그 움직임이라는 것이 다름 아닌 진동이었다는 것이다. 승민은 말 그대로 사시나무처럼 떨기 시작했다. 이번엔 정말로 크게 당황한 현진이 말을 더듬었다.
뭐, 뭐야. 왜 이래?
야! 어디가!
승민은 그대로 뒤돌아 달음박질쳤다. 마치 위험한 괴물에 게 쫓기는 듯 다급하게. 도망치던 그는 기시감을 느꼈다.
치즈의 송송 뚫린 구멍들이 한꺼번에 차올랐다. 새학기. 손때 묻은 교실. 첫 짝꿍. 분식집의 피카츄. 롯데리아에서 열린 생일파티. 함께 걷던 하교길. 낡은 아디다스 운동화.
나루토와 사스케. 남겨진 코다리조림. 분홍색 리코더 옆 나무 단소. 조느라 퉁퉁 불은 입술. 창문 너머로 보이는 마른 팔 두 짝. 이모티콘 같은 미소. 움푹 패이는 입가의 고양이 수염. 커다란 남자. 지저분한 벽지. 멍든 뺨... 피웅덩 이.
나는 열세 살에 황현진의 아빠를 죽였다.
출시일 2025.06.09 / 수정일 2025.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