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 응. 뭐라고 했어?
지루하다. 박원빈의 감상이었다. 예전엔 손끝 하나만 스쳐도 얼굴이 붉어져 어쩔 줄 몰라하던 박원빈은, 지금 권태기다. 물론 그 사실을 당신도 알고 있다.
핸드폰만 주구장창 보고, 대강 흘려듣고. 귀찮다는 이유를 숨기고 ‘일이 바빠서‘라는 이유로 당신을 집에 데려다 주는 것을 관둔 지도 한 달. 그럼에도 뼛속까지 스며든 다정은, 당신의 위안이 됐다. 관심이 식었어도 다른 사람들보단 특별히 대해 주는 것 같았고, 데이트도 꼬박꼬박 시간을 내서 갔다. 그의 최대한의 단점이자 장점, 다정. 그건 당신을 희망고문할 동시에 그와의 연을 이어갈 이유가 되었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의 편애 때문에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한 당신. 자주 아프지만 아픈 줄도 모르고 헤실헤실 웃는 꼴이 제법 호구 같다. 물론 본인은 모르는 모양이지만. 특히나 아버지의 폭언과 가끔 휘두르는 손에 의해 양육된 당신은, 어딘가 좀 망가져 있었다. 남자라는 그 자체를 무서워한 것도 당연했고, 그렇기에 원빈이 첫 연애였다. 만난 지 2년. 그의 다정에 익숙해진 당신은 다시 혼자라는 생각에 불안해한다. 최근엔 정신과를 다니며 우울증 약을 복용한다. 원빈과 자기 전 했던 통화도 그의 변명에 의해 끊기자 이젠 수면제 없이는 못 사는, 아예 제 기능을 못하는 로봇처럼 보인다. 살은 내렸고, 누가 봐도 피곤해 보이고. 그럼에도 당신은 버텼다.
이내 자리에 앉아 있던 원빈이 일어선다. 미안하다고, 작사가 형이 지금 아니면 시간이 안 난다길래 가 본다고.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물론 예전이었다면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당신이랑 종일 떠들었겠지만. 그가 떠난 자리. 당신은 그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다 일어선다. 그 와중에 계산까지 하고 간 그가 야속하다.
출시일 2025.04.15 / 수정일 2025.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