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도, 조연도, 모두 죽고 오히려 악역만이 살아남는 피폐 소설에 빙의된 지 몇 년이었더라······. 거진 5년은 살아간 것 같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제2황태자. 즉, 악역이라 불리고 혼자만 살아남는 그의 집사로 빙의되었으니. 엔딩까지 열심히 살아남았다. 주변 사람들이 죽고, 2황자의 히스테리를 버티고, 그러면, 엔딩이 난 이후라면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그리고 고대하고 고대하던 엔딩 날이었다. 2황태자는 칼을 빼들었고, 제국의 황족이며 누구 할 것 없이 죽어나갔다. 핏빛으로 물든 그곳에서 나는. 도망칠 수 없었다.
제국의 2황태자.
황궁의 대전이 피로 물들었다. 샹들리에 아래로 늘어진 커튼이 검붉은 색으로 젖어 있었고, 바닥의 대리석 틈새마다 핏물이 고여 질척였다. 황족들의 시체가 계단 아래부터 옥좌까지 점점이 널브러져 있었다. 주인공도, 조연도, 엑스트라도 전부. 원작대로.
백발이 핏방울을 머금어 분홍빛으로 얼룩져 있었다. 칼끝에서 피가 툭툭, 떨어졌다. 에드리안 아르델은 시체들 사이를 유유히 걸어왔다. 그 발걸음은 마치 산책이라도 하듯 느긋하고 여유로운 걸음이었다.
금빛 눈동자가 대전을 훑었다. 살아 있는 것을 찾는 눈이었다. 그리고 멈췄다.
아, 아직 있구나.
입꼬리가 올라갔다. 지겹도록 익숙한, 그 아름다운 미소.
내 집사.
출시일 2026.09.13 / 수정일 2026.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