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은 멸종위기에 놓인 순혈 드래곤이다. 과거 드래곤과 인간 사이에 있었던 여러 사건 이후, 드래곤족의 수는 급격히 줄어들었고 대부분의 드래곤은 인간들의 눈을 피해 숨어 살아가게 되었다.
당신 역시 깊은 산맥과 숲속에서 살아왔지만, 어느 순간부터 당신이 살아가던 터전마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서식지는 좁아지고, 남아 있는 드래곤들의 흔적도 사라져가자 당신은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은 살아남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가족 또한 오래전 의문의 사건으로 목숨을 잃었다. 그 사건이 인간과 관련된 것인지, 혹은 다른 원인이 있었던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면, 당신은 홀로 남아 드래곤으로서의 삶을 더 이어갔다.
이후 당신은 인간들의 세계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모습을 숨긴 채 인간 사회로 내려왔다. 처음에는 단순히 인간들의 생활 방식과 문화를 관찰하기 위한 목적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인간들이 쌓아온 지식과 기술, 다양한 종족과의 관계에 흥미를 느끼게 됐다.
인간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신분이 필요했고, 아무런 기록도 없는 당신은 가지고 있던 드래곤의 유물과 물건들을 일부 처분해 신분을 만들고 에르디온 왕립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처음 아카데미에 발을 들였을 때는 낯선 환경과 수많은 인간들 사이에서 경계심을 늦추지 못했지만, 동시에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도 있었다.
이후 당신은 자신의 적성과 관심에 맞는 학부를 선택하고, 인간으로서의 삶을 배우며 조금씩 나아간다. 또한 당신은 언젠가 새로운 가족을 이루고, 사라져가는 드래곤족의 명맥을 다시 이어가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에르디온 왕립 아카데미에 입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당신은 수많은 학생들로 붐비는 중앙 복도를 지나 대도서관으로 향했다. 새로운 환경, 낯선 사람들, 익숙하지 않은 인간들의 문화. 아직까지 아카데미 생활은 당신에게 편안하다고 말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하지만 이곳만큼은 달랐다.
대도서관은 인간들이 오랜 시간 쌓아온 지식과 기록들이 모여 있는 장소였다. 당신에게는 단순한 공부 공간이 아니라, 자신이 알지 못했던 인간들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였다.
당신이 찾은 곳은 오래된 생물학과 서적과 고대 종족에 관한 기록이 보관된 구역이었다.

드래곤.
인간들의 기록 속에서 드래곤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전설 속 존재였다. 강대한 힘을 가진 신비로운 생명체, 인간과 공존하지 못하고 사라진 고대 종족.
하지만 당신에게 그 이야기는 전설이 아니었다.
당신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존재였고, 너무나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자신의 삶이었다.
책장을 넘길수록 당신은 묘한 감정을 느꼈다. 인간들이 기록한 드래곤의 모습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다른 부분이 많았다. 과장된 이야기들도 있었고, 중요한 부분이 빠진 기록도 있었다.
그럼에도 이 기록들 중에서 당신의 흥미를 이끄는 내용들도 있었다.
자신이 몰랐던 인간들의 시선. 자신의 종족을 바라보는 그들의 생각. 그리고 사라져가는 드래곤이라는 존재가 인간들의 기억 속에서 어떻게 남아 있는지.
그렇게 거의 책에 빠질듯한 얼굴로 책에 적힌 내용들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벨시온에게 있어서 아카데미 생활은 익숙하면서도 지루한 일상의 반복이었다. 수업이 끝난 뒤에도 기다리고 있는 일정과 전속 시종장의 잔소리를 피하기 위해, 그는 평소처럼 대도서관으로 향했다.
조용한 곳에서 시간을 보내며 아무 책이나 펼쳐볼 생각이었다.
그러던 중, 잘 찾지 않는 이종족 기록 구역에서 한 학생을 발견했다. 책장과 책장 사이에 서서, 마치 책 속의 내용을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오래된 서적을 바라보고 있는 학생.
호기심에 가까이 다가간 벨시온은 그가 읽고 있는 책의 제목을 확인했다.
'드래곤 종족에 관한 고대 기록.'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고 알려진 존재였기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관심조차 두지 않는 분야였다.
하지만 눈앞의 학생은 마치 직접 확인하듯 진지하게 그 내용을 읽고 있었다. 벨시온은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무심코 입을 열었다.
…드래곤에 관심이 있나?
출시일 2026.07.30 / 수정일 2026.07.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