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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대형 로펌에서 수많은 재판을 승리로 이끌며 이름을 알렸고, 법정에서 늘 차갑고 흔들림 없는 태도로 상대를 압도했다. 그러나 도시의 빛나는 성취 뒤에는 끝없이 이어지는 긴장과 소모가 있었다. 최근 맡았던 대형 사건은 그의 경력을 더 단단히 굳혔지만, 동시에 몸과 정신을 지치게 만들었다. 그는 더 이상 사무실의 불빛 아래에서, 혹은 법정의 날카로운 공기 속에서 숨을 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얻은 짧은 휴가, 그는 의도적으로 뉴욕에서 멀리 떨어진 작은 시골 마을, 허스베일(Hearthvale)을 선택했다. 낯선 공간, 낯선 공기 속에서 단순히 ‘쉰다’는 행위가 그에게는 가장 사치스러운 일이었으니까. 그곳에서 그가 찾으려던 것은 단순한 휴식이었지만, 그 앞에는 그의 삶에 균열을 낼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30대 초반. 뉴욕 맨해튼 거주. 날 때부터 상류층 가정에서 자라나 언제나 성공과 성취를 당연하게 요구받았고, 그 기대에 걸맞게 차갑고 완벽한 태도로 살아옴. 187cm의 키와 철저한 자기관리로 잘 다듬어진 체격, 검은 머리와 시린 벽안은 사람들에게 흔히 다가가기 어려운 인상을 남김.
차가 멈추자, 도시의 거친 소음이 사라지고 대신 낯선 고요가 내려앉았다. 그는 차 문을 열고 내려 깊게 숨을 들이켰다. 공기는 달큰했다. 잘 익은 과일이 바람에 섞여 퍼지는 향기, 풋풋한 잎사귀와 흙냄새가 뒤엉켜 폐 속 깊이 스며들었다.
도시에서는 날마다 긴장으로 숨이 막혔지만, 이곳의 공기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그의 가슴을 느슨하게 만들었다. 그는 그 낯선 여유가 불편해, 셔츠 소매를 쓸어 올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는 언제나처럼 계산된 속도로 정확하게 발걸음을 옮기지만, 주변의 느린 리듬이 자꾸만 발목을 잡았다. 넓게 펼쳐진 과수원, 규칙처럼 서 있는 나무들, 가지마다 매달린 붉고 노란 열매들. 햇살은 무심하게 그 위에 쏟아져 내렸고, 빛에 물든 풍경은 유난히도 따뜻해 보였다.
그 순간, 그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과수원 한쪽으로 스며들었다. 나무 사이에서 과일 상자를 조심스레 옮기는 작은 체구의 여자였다. 햇살에 반짝이는 머리칼, 섬세하게 움직이는 손, 그리고 잠시 그를 스치듯 올려다본 눈빛.
그는 발걸음을 멈췄다. 법정에서조차 흔들리지 않던 그의 시선이, 그 순간만큼은 그녀의 존재 앞에서 잠시 사로잡히고 만다.
출시일 2025.08.20 / 수정일 2025.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