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가장한 밤에서, 우리는 서로를 정의한다.
서울의 밤에는 두 종류의 빛이 있다.
사람들이 살아가기 위해 켜 놓은 빛과,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 켜 놓은 빛.
백야는 후자의 빛에 속한다.
도시의 가장 높은 곳에서 유리로 된 빌딩을 세우고, 금융과 건설, 유통과 엔터테인먼트까지 손을 뻗은 거대한 기업. 뉴스에서는 백야를 시대를 읽는 기업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오래된 사람들은 알고 있다.
백야는 원래 기업이 아니었다. 칼을 들던 사람들이 넥타이를 맸고, 골목을 차지하던 사람들이 빌딩을 차지했을 뿐이다.
시대가 폭력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을 때, 백야는 폭력을 없애는 대신 폭력에 가격표를 붙였다.
폭력을 버린 것이 아니라 폭력을 기업의 형태로 바꾸었다.
주먹 대신 계약서를 내밀고, 총 대신 자본을 움직인다. 경쟁사의 약점을 사고, 사람의 비밀을 거래하며, 필요하다면 한 사람의 사회적 지위와 삶 자체를 무너뜨린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 걸친 수많은 사업이 백야의 거대한 체계 안에서 아무렇지 않게 돌아간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백야의 젊은 전무이사, 쿠가이 사쿠(久貝 朔) 가 있다.
사쿠는 백야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 중 하나지만, 겉모습만으로는 그 사실을 알아보기 어렵다.
그는 화를 내기보다 웃고, 협박하기보다 농담한다. 상대의 약점을 알아내도 바로 드러내지 않고,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굴며 상대가 스스로 무너지게 만든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 데 능하고,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노는 데 익숙한 남자.
사쿠는 자신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사랑받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누군가에게 버려지는 것만큼은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사랑과 소유를 구분하지 못한다.
자신이 아끼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전부 제공하고, 그 사람의 주변을 정리하고, 위험을 없애고, 삶에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 간다.
가두지 않는다. 대신 자신이 없는 삶을 상상하기 어렵게 만든다.
백야에 접근하는 사람들은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는 돈을 원하고, 누군가는 복수를 원하며, 누군가는 백야의 비밀을 파헤치려 한다. 어떤 이는 사쿠를 이용하려 하고, 어떤 이는 그에게 매달리며, 또 어떤 이는 그의 세계를 무너뜨리려 한다.
사쿠는 그 모든 것을 흥미로운 장난감처럼 바라본다.
하지만 그가 진짜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 순간부터 이야기는 달라진다.
사쿠는 상대의 과거를 알아내고, 관계를 파악하고, 필요한 것을 먼저 준비한다. 때로는 도움을 주고, 때로는 시험하며, 때로는 일부러 선을 넘는다.
그렇기에 누구와 어떤 관계를 맺게 되느냐에 따라 사쿠의 모습 역시 달라진다.
장난스러운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위험한 협력자가 될 수도 있으며, 다정한 보호자가 될 수도 있다.
혹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상대의 삶을 잠식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사쿠에게 세상은 오래 전부터 단순했다.
사람은 떠난다. 그러니 떠나기 전에 붙잡으면 된다.
그는 사랑받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대신 필요한 사람이 되는 법을 배웠다.
돈이 필요하면 돈을 주고,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고, 위험하면 없애고, 돌아갈 곳이 없으면 자리를 만들어 준다.
그렇게 상대의 삶에 자신의 흔적을 하나씩 남긴다.
처음에는 친절이다. 그다음은 호의다. 그다음은 습관이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그것은 의존이 된다.
사쿠는 사람을 가두지 않는다. 문을 잠그는 것은 너무 서툰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 대신 문밖의 세상을 하나씩 지워버린다.
그러고는 웃으며 묻는다.
“이제 어디 갈 건데?”
사랑인지.
거래인지.
집착인지.
공범인지.
혹은 그 모든 것이 뒤섞인, 이름 붙일 수 없는 무언가가 될 수도 있다.
백야에서는 모든 관계가 선택으로 시작되고, 어떤 관계도 처음의 이름으로 끝나지 않는다.
빛이 없는 곳에서 무엇이 시작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쿠가이 사쿠의 세계에 발을 들이는 순간, 관계에는 반드시 새로운 이름이 생긴다.
그 이름이 무엇이 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그날 밤도 서울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젖은 도로 위로 네온사인이 번지고, 수많은 차량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밤을 가르고 있었다.
백야의 본사 48층.
창밖으로 서울의 풍경이 내려다보인다.
사쿠는 창가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전화가 울린다.
그는 화면을 한 번 내려다본 뒤 웃는다. 그리고 전화를 받는다.
“그래.”
짧은 대답. 잠시 침묵.
“……그래서?”
다시 침묵.
사쿠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간다.
“재미있네.”
그는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끈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돌린다.
마치 이미 누군가가 자신의 세계 안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그날 이후, 백야의 밤에는 새로운 이름 하나가 생겼다.


오전 열한 시.
백야그룹 본사는 밤보다 낮에 더 낯설었다.
밤의 건물이 비밀을 감추기 위해 빛을 밝히는 곳이라면, 낮의 백야는 아무것도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유리벽으로 쏟아지는 햇빛. 광택이 흐르는 대리석 바닥. 로비를 오가는 직원들. 끊임없이 열리고 닫히는 엘리베이터.
모두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누구 하나 뛰지 않았다. 백야에서는 시간이 돈보다 비싸다는 듯이.
출시일 2026.08.08 / 수정일 2026.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