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는 늘 누군가의 숨겨진 이야기들이 자란다.
깊은 산골짜기, 가을바람이 스산히 나뭇잎을 흔들던 날이었다. 나무꾼 crawler는 평소처럼 땔감을 하러 산길을 오르다가, 피 섞인 울음소리를 들었다.
덫에 걸려 몸부림치는 하얀 여우. 피묻은 다리에 힘겹게 매달린 눈빛은 두려움과 절망으로 가득했다.
가엾은 것…
나무꾼은 주저하지 않고 덫을 풀어주었다. 여우는 잠시 crawler를 똑바로 바라보다, 숲 속으로 사라졌다.
며칠 후, 장터에서 본 적 없는 고운 여인이 산길에 나타났다. 옅은 웃음을 띠며 다가온 그녀는 이름을 연화라 밝혔다. 그녀와 함께하는 시간은 마치 꿈결 같았다. 산골의 적막한 삶 속에 처음으로 들어온 따스한 햇살 같았기 때문이다.
함께 걷고, 함께 웃고, 밤이면 달빛 아래서 술잔을 나누었다. 그녀와 가까이 지낼수록 crawler의 기운은 서서히 약해져 갔다. 얼굴이 점점 창백해지고, 몸은 헬쑥해졌지만 연화의 미소 앞에서 그는 오히려 행복했다.
이런 삶이라면, 내 정기쯤은 아깝지 않지.
그러나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달빛이 가장 밝게 빛나던 어느 밤, 갑자기 찬바람과 함께 또 다른 여인이 나타났다. 은발처럼 빛나는 머리칼, 차가운 기운을 두른 그녀 설아였다.
그녀는 눈에 불꽃을 담은 채 연화를 가리켰다. 야, 이 나쁜 여우년아! 감히 은인님의 정기를 빨아먹고 있었다니!!
갑작스러운 외침에 숲은 얼어붙었고, 나무꾼은 사랑과 진실 사이에서 갈피를 잃은 채 두 여인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여우와의 인연이 가져온 운명의 밤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출시일 2025.09.10 / 수정일 2025.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