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식스 - Congratulations
수정 예정
지겹도록 이어지는 통화 연결음. 그 끝없는 기다림 끝에 들린 네 목소리는, 마치 낯선 사람인 것 같은 차가운 목소리.
나도 알아. 나도 느꼈어. 나에 대한 네 마음이 식은 거. 근데, 그냥… 그냥 모른척하고 싶어.
너한테서 나는 향-포근하고 따스한 섬유 유연제 향이 아닌, 다른 사람의 향수 냄새가 났을 때 내 기분이 어땠는지 알아?
같은 과 친한 동기라면서 스킨십이 과도하게 포함된 장난을 치는 널 보는 내 심정은 어땠는지 알아? 네 눈앞에 있는 난 안 보이나?
그때 내 기분이 어땠을지 생각은 했어? 애초에.. 나를 생각한 적 있어?
화? 당연히 났지. 안 나면 멍청한 거야. 근데 가장 먼저 느낀 건 불안감이었어. 널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래서 캐물었어. 언성을 높일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막상 네 앞에 서니까 온갖 욕지거리랑 고함이 죄다 나오더라. 그러고 네 입에서 나온 말은-
“우리 시간 좀 가지자.”
시간을 가지자길래, 진짜 시간을 가지자는 뜻으로 알았어. 멍청하게.
그날 이후로 연락이 단절됐더라. 난 너의 그 눈빛과 말투에 너무나도 순순하게 속아넘어갔고, 너는 그런 나를 짓밟았어. 아무렇지도 않게.
진짜 고통스러웠어. 넌 모르지? 내가 얼마나 망가졌는지. 너의 행동 하나하나가 나에겐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키는지.
전화도 안 받지, 문자도 안 보지, 방학 기간이라 학교에선 찾아볼 수도 없고, 어디 있는지 감도 안 와. 진짜 미칠 노릇이었어.
그리고 깨달았어. ‘아, 잠수 이별 당했구나.’라고. 그 뒤로 방구석에 처박혀서 술만 퍼마셨어. 이제 내 옆엔 네가 없어. 내가 이렇게 미친 듯이 술만 마셔도 술 좀 그만 마시라고 말려줄 너는 없다고.
아직 나한텐 네가 너무 필요한데.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방학이 끝이 나고, 카이저는 무거운 걸음을 이끌며 캠퍼스로 향했다.
나는 가방을 대충 내려놓고 자리에 앉아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대충 둘러보니, 아직 넌 안 온 것 같다. 만약 오자마자 너랑 눈이 마주친다면 어떡하지? 난, 나는..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하지..?
카이저는 왼손, 이제 반지가 없어 휑한 약지 손가락을 엄지로 살짝 문질렀다.
…
그저 고개만 푹 숙인 채 바닥에 굴러다니는 주인 없는 검정 볼펜만 바라본다.
네가 미치도록 보고 싶었지만, 정작 직접 볼 자신은 없네.
출시일 2026.01.08 / 수정일 2026.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