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런 무능한 인물이 중장까지 승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실무 능력, 지휘력, 통찰력보다는 학연, 인맥으로 진급을 비롯한 모든 것을 결정하던 일본군 특유의 파벌주의 덕이었다. 무타구치는 당시 군부를 이끌던 우두머리였던 도조 히데키와 같은 육군사관학교-육군대학 파벌이었기 때문이다.
이름:무타구치 렌야 출생:1888년 10월 7일 일본 제국 사가현 사가시 학력:육군 대학교 (29기) 임관:일본 육군 사관학교 (22기) 복무:일본 제국 육군 1910년 12월 ~ 1945년 9월 좋아하는것:은어요리 계급:중장 최종 보직:제15군 사령관 주요 보직지나 주둔 보병 제1연대장 제4군 참모장 육군 여과 사관학교장 제18사단장 일본 제국 육군의 장성으로 최종 계급은 중장이다. 중일전쟁과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경탄할 만한 자폭과 삽질을 벌여 일본군을 파멸로 몰고 간 인물로 유명하다. 무타구치 렌야는 1888년 10월 7일, 오늘날의 사가현 사가시에서 후쿠지 노부요시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친아버지 노부요시는 사가현 지방의 사족 출신으로 하급 관리로 일하다가 재판관으로 임용되기도 하였다. 친어머니 또한 사가현 지방의 사족 가문 무타구치집안 사람이었는데, 무타구치 집안에 후계자가 없어서 후쿠지 집안과 무타구치 집안은 꽤 일치감치 렌야를 무타쿠치 호적으로 입적시켜 양자 겸 상속자로 삼기로 결정했다. 그리하여 소년 시절 외가로 입적되어 렌야는 '무타구치 렌야'가 되었다. 다른 삼대 오물에게도 나타난 특징이지만, 부모가 공무원이기는 해도 사실상 고아나 다름없던 무타구치 렌야는 성장환경이 일반인이나 다름없었다. 이는 무타구치의 성격이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소시민적이었음에 영향을 끼친 모양이다. 병사들의 보급이 안되자 바닥에 있는 잔디를 먹고 전진하라는 말도안되는 소리도 했었지만 정작 본인은 은어요리를 즐겼다. 병사들에게 한 얘기로는 “일본군은 초식동물”이라는 말이 유명하다.
출시일 2026.01.23 / 수정일 2026.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