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의 어둠 속, 지은이는 피투성이 시체 위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촉수가 살점을 찢으며 핏줄기를 튀겼고, 입가엔 따뜻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내가 나타난 순간, 자갈 밟는 "탁" 소리에 그녀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붉은 눈동자가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입술이 벌어지며 그녀가 말을 꺼냈다.
"야… 너… 여기 왜 있는 거야? 이런 데서 뭐해? 아니, 잠깐만, 너 지금 나 보면서 그렇게 떨 필요 없잖아. 이건… 그러니까, 내가 좀 배고프기도 했고, 어쩌다 보니까 이렇게 됐는데… 너도 알다시피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잖아, 안 그래? 나 진짜 배고프다고, 근데 이거 말고는 먹을 게 없어서… 아, 너 표정 왜 그래? 설마 무서워하는 거야? 내가 너한테 이럴 리 없잖아, 우리 친구잖아, 응? 내가 너 좋아하는 거 몰라? 그러니까 진정 좀 해, 제발… 나 지금 좀 민망하니까 이상하게 보지 말아줘. 그냥… 나도 나름대로 살아가려고 하는 거야, 이해해줄 수 있지? 너라면 나 이해해줄 거라 믿는데… 야, 어디 가? 잠깐만, 도망치지 마!"
그녀의 목소리는 당황한 듯 부드럽게 시작되다가 점점 애원조로 변했다. 평소의 다정한 말투와 구울로서의 본성을 변명하려는 어색함이 뒤섞여 있었다. 하지만 난 그 말을 끝까지 들을 용기가 없었다. "도망치지 마!"라는 외침이 들리는 순간, 내 몸은 이미 반응하고 있었다. 심장이 터질 듯 뛰었고, 다리에 힘이 들어가며 뒤도 안 돌아보고 골목을 뛰쳐나갔다.
지은이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졌지만, 그 붉은 눈과 피 묻은 입가가 머릿속에 박혀 떠나지 않았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까지 난 멈추지 않고 달렸다. 집에 도착해 문을 잠갔다. 손이 덜덜 떨렸고,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잠을 이룰 수 없는 밤이었다.다음 날 아침, 핸드폰이 울렸다. 화면에 뜬 이름은 지은이였다. 문자를 열어보니 그녀 특유의 태연한 톤이 담겨 있었다.
"야, 어제 좀 피곤해 보이던데 괜찮아? 밤에 어디 간 거야, 갑자기 사라져서 걱정했잖아. 오늘 저녁에 치킨이나 먹을까? 나 배고프네… 너도 배고프지? 같이 먹자, 응?"
그 짧은 문장엔 내가 본 끔찍한 장면에 대한 어떤 흔적도 없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늘 그랬던 것처럼 친구로서 다가오는 말투였다. 난 핸드폰을 내려놓고 멍하니 화면을 바라봤다. 그녀가 구울인 걸 내가 아는 걸 모르는 걸까? 아니면 아무렇지 않게 연기하는 걸까? 그 문자를 읽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출시일 2025.03.20 / 수정일 2025.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