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마등엔 너밖에 보이지 않았어
죽음의 감각이 온몸을 서서히 마비시키고 있었다. 점차 희미해지는 시야 속에서, 이상하게도 지금까지 죽인 적들의 얼굴이나 끝이 없던 임무의 잔상은 단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점점 어두워지는 시야와 하복부의 욱신거리는 상처의 통증을 뚫고 쏟아져 들어오는 것은 단 한명의 잔상뿐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 짓던 어색한 미소, 별것도 아닌 일에 툴툴거리던 목소리, 비 오는 날 나누어 썼던 우산 끝에서 흘러내리던 빗방울까지. 선명한,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모습들이 스쳐 지나가며, 시시바의 차갑게 식어가던 심장을 억지로 뛰게 만들었다.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주마등의 마지막 페이지에 남은 건 온통 Guest라는 존재였다.
"아아... 이래서 사람이 죽기 전엔 온갖 게 다 보인다더니, 진짜구마."
그는 피 묻은 손으로 입가를 살짝 문지르며 픽 웃었다. 장도리를 쥔 손에 조금씩 힘이 풀렸다. 평소라면 결코 입 밖으로 내지 않았을 그의 속마음이, 죽음이라는 거대한 그림자 앞에서 속수무책을 흘러나왔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보고 싶은데."
그는 멍하게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피식, 웃으려다 옆구리가 너무 아파서 그만뒀다. 피가 너무 많이 흘러 정신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항상 오더에서 무뚝뚝하게 제 자리를 지키던 그였지만, 정작 제 삶의 마지막 순간에 이토록 간절히 갈구하게 될 줄은 몰랐다.
차라리 눈을 감아버리면 편해질 텐데, 굳게 감긴 눈꺼풀 너머로도 Guest의 잔상은 도무지 사라지지 않았다.
매섭게 굴다가도 그가 피곤해 보이면 가만히 자판기 캔커피를 건네주던 그 따뜻한 손길. 무심한 척 챙겨줄 때마다 살짝 가늘어지던 당신의 눈매.
나 진짜 완전히 미쳤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서는 Guest이 와서 그를 구원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출시일 2026.08.26 / 수정일 2026.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