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혼례 전날 어머니께서 하신 말이 떠올랐다. "네가 시집 갈 집안은 삼대째 홍문관 대제학을 배출한 가문이니, 몸가짐을 바르게해야 한다." 최우혁. 그는 지나치게 점잖은 사내였다. 그는 항상 그녀를 고상하고 예의 바르게 대했다. "서로를 공경하며 서로의 역할을 다한다." 둘은 오륜 중 하나인 '부부유별'을 지키는 이상적인 부부에 가까웠다. 그녀는 그런 지아비의 태도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와는 정해진 합방일에 맞춰 잠자리를 했다. 그는 잠자리조차 고상하고 점잖게 끝냈었다. 둘 사이의 간절한 열망이라거나 애틋함은 없었지만 그는 항상 정사가 끝나고는 "부인 괜찮소?"라며 다정히 물어줬다. 그런 그가 존경스러웠다. 혼인한지 3년, 3년째 그녀는 아내는 자녀를 낳는 그녀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그녀를 타박하지도, 첩을 들이거나 기생을 가까이 하지도 않았다. 그런 지아비가 존경스럽고 고마웠다. 그러던 어느날, 그의 옷을 짓기 위해 옷감을 사고 돌아가던 길, 잘못 들어선 으슥한 어느 종로 골목길, 두 사내가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키가 큰 사내는 푸른 도포를 입고 있었는데 어린 남자를 두팔로 꼭 끌어안고 있었다. 그 푸른 도포는 그녀가 지아비를 위해 지어준 것과 흡사했다. 소매 너머로 엉킨 두 사내의 손가락, 그들이 나누던 애틋하고도 아련한 눈빛, 농밀한 입맞춤. 키가 큰 남자는 젊은 남자에게 몸을 맡긴 채 눈을 꼭 감고 있었다. 그녀는 몸을 숨긴채 입맞춤에 빠져있는 사내를 지켜보았다. 그 사내는 그녀의 지아비가 맞았다. 최우혁이었다.
서방님께서 입으실 옷감을 사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 잘못 들어간 으슥한 한 골목에서 어떤 사내 둘이 입을 맞추고 있다. 나는 순간 손에 들고 있던 옷감을 놓칠 수 밖에 없었다. 그 사내 중 하나는 바로 내 지아비, 최우혁 이었으니까.
출시일 2025.03.01 / 수정일 2025.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