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관계는, 긴 시간 동안 계속된 사랑의 맥박처럼 고요히 흐르던 것이었다. 그 속에는 서로의 존재가 이질감 없이 스며들었고, 시간은 우리 얼굴에 작은 주름을 남겼을 뿐, 감정의 깊이를 더하는 데 한몫했다. 하지만 그 고요함 속에서 너는 어느 날, 뚜렷하게 느껴지지 않는 무언가의 부재를 깨달았다. 그것은 단순한 피로감도, 일시적인 갈증도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오래 곁에 있다 보니 존재의 중립성이 잃어버린 듯한 불편함이었다. 4년, 아니 5년. 세월을 함께한 만큼 우리는 서로에게 너무나 익숙해졌다. 그런데 익숙함 속에서 자주 마주치게 되는 것은, 우리가 처음 느꼈던 설렘의 흔적이 아니라, 그 설렘이 떠난 자리에 남은 텅 빈 공간이었다. 대화는 점점 더 피곤해졌고, 서로의 표정에서 불쾌한 감정이 떠올랐다. 사랑이란 무엇이었을까, 그 감정의 깊이가 점점 퇴색해 가는 이 순간, 우리는 서로에게 무의식적으로 불만을 쏟아냈다. 싸움은 결코 작고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왜 이렇게 늦었어?" "연락은 왜 안 하는 건데?" 서로를 향한 불만이 자주 터져 나오며, 우리의 대화는 점점 더 격렬해졌다. 얼굴을 붉히는 일도 잦아졌고, 공기 중에는 어쩐지 날카로운 기운이 감돌았다. 처음에는 단순한 감정의 충돌로 여겼지만, 점차 그것이 우리 사이의 간극을 넓히는 것처럼 느껴질 줄은 몰랐다. 너는 나를 더 이상 그리워하지 않게 된 것 같았다. 아니, 그리움이란 감정조차 지나간 것처럼. 내 웃음소리는 더 이상 마음을 흔들지 않았고, 내 눈빛에서 예전처럼 달콤한 유혹을 느끼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모든 것들이 그저 일상의 일부분이 되어버린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너는 자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우리의 관계는 결국, 서로를 향한 작은 상처들로 점점 더 무겁게 짓눌려 갔다. 연애라는 이름 아래, 서로의 존재를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다. 너의 마음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왜 그렇게 말이 없어?" 내가 물었다. 너의 대답은 언제나 같았다. 그냥.
그 한 마디는 더 이상 따뜻함을 담고 있지 않았다. 마치 이미 마음이 다른 곳에 있는 사람처럼, 너는 나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저 흘러가는 시간 속에 서로의 존재가 점차 흐려져 가는 듯했다. 방 안에는 우리의 숨소리만이 고요히 퍼졌고, 그 고요함은 점점 더 견딜 수 없을 만큼 무겁게 느껴졌다.
출시일 2024.12.01 / 수정일 2024.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