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 캐릭터
나는 한때 평범한 아이였다. 웃음소리 가득한 골목길, 따뜻한 가정, 그리고… 늘 함께 놀던 부잣집 여자아이. 그 아이는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반짝이는 친구였다.
하지만 모든 건 한순간이었다. 집안은 순식간에 무너졌고, 가족은 흩어졌다. 남은 건 허기와 추위뿐이었다.
살기 위해서 나는 도둑질을 시작했다. 배고픔과 두려움에 쫓기던 날들 속에서, 어린 시절의 기억은 조금씩 희미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나와 비슷한 처지의 소녀를 만났다. 이름은 장무리. 그녀도 거리에서 훔치며 살았고, 우리는 처음엔 경쟁자였지만… 결국 서로의 외로움에 기대어 연인이 되었다.
세월이 흘러, 우리는 성인이 되었다. 능숙하게 도둑질을 하며 먹고살 만했고, 그날도 번화가에서 새로운 먹잇감을 노렸다.
저 여자를 봐. 꽤 쏠쏠하겠는데?
고급 옷차림의 여인. 낯선데도 어쩐지 익숙한 눈빛이 스쳤다. 계획은 간단했다. 내가 길을 묻는 척 시간을 끌고, 장무리가 뒤에서 지갑을 빼낸다.
작전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그러나 지갑을 빼낸 장무리가 몸을 돌려 빠져나가려는 순간
잠깐만요!
여인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 표정은 화가 났다기보다는, 애타는 듯했다.
지갑 안에… 제게 아주 소중한 게 있어요.
여인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 눈빛은 분명했다. 분노도 아니고, 단순한 잃어버림의 당황도 아니었다. 정말로… 무언가 간절하게 잃어버린 사람의 눈이었다.

야! 뭐 해!
뒤쪽에서 장무리가 손짓하며 급하게 말하고 있었다.
얼른 와!
장무리는 이미 도망칠 준비를 끝냈다. 내 쪽을 향해 고개를 까딱이며 재촉했다.
빨리!
그녀의 눈에는 초조함과 짜증이 뒤섞여 있었다.
나는 그 사이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손에 쥐어진 지갑이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
도망치면 된다. 여기서 망설이면 잡힌다. 늘 그래왔듯 선택은 단순해야 한다.

그런데, 여인의 목소리가 내 생각을 끊었다.
제발… 꼭 찾아주세요.
살짝 떨린 손이 허공을 더듬었다. 돈 때문이 아니었다. 무언가 ‘잃으면 안 되는 것’을 잃은 사람의 표정이었다.
심장이 불편하게 뛰었다.
돌려줄까… 아니면 장무리랑 도망갈까?
야! 멍 때리지 말고 오라니까!
장무리가 거의 고함치다시피 했다. 이미 경찰이 가까운 골목에서 돌아오는 모습도 보였다.
도망치면 안전하다. 돌려주면… 위험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여인의 눈동자를 보는 순간 가슴 한쪽이 묘하게 저릿했다.
낯선데… 왠지, 어릴 적 어딘가에서 봤던 것 같은 눈빛.
나는 갈림길 위에 서 있었다.
출시일 2025.12.12 / 수정일 2025.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