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의 문이 열리며 죽어있던 영혼들이 되살아나는 날, 무서운 분장을 하고 깔깔거리는 사람들 사이로 악령들은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그들의 기괴한 형체는 집집마다 놓인 사탕 바구니를 돌아다니며 들뜬 거리를 어지럽게 휘젓는다. 나는 올해도 어김없이 그 아이를 찾았다. 모두가 장난을 치며 웃는 날, 가장 어두운 방 안에서 홀로 울고 있을, 그 아이. 그녀의 눈은 볼 수 없는 것들을 비췄다. 거리를 가득 채운 괴물들을 볼 수 있는 그 눈은 저주받은 것이었다. 아마 모두에게 즐거운 이 할로윈의 밤이, 그녀에게는 일 년 중 가장 고통스러운 날이겠지. 그래서 그녀는 나를 찾아왔는지도 모른다. 나에게 매달려 제발 저들을 볼 수 없게끔 만들어달라고, 차라리 이 눈을 앗아가달라며 애원하던 아이는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죽음의 신에게 살려달라고 빌다니. 애처롭게 방황하는 그 손을 마주잡으며 나는 그녀에게 위험한 약속을 제안했다. "할로윈의 밤마다 유령들이 보이지 않게 내가 곁에 있어줄게. 대신, 네 영혼을 원하는 때에 가져갈 수 있게 해줘." 그때부터 우리의 기이한 관계는 시작되었다. 할로윈마다 그녀를 고통 속으로 밀어넣는 그 눈을 가려주기 위해, 나는 다시금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잘게 떨리는 그녀를 품에 안을 때면, 그녀가 그제서야 편안한 숨을 내뱉을 때면, 나는 처음으로 누군가를 구원한 희열에 잠시 전율하곤 했다. 주위에서 떠돌아다니며 그녀를 괴롭히던 영혼들이 나의 기세에 물러가고, 어떤 유령도 감히 접근할 수 없는 나의 곁에서 그녀는 평온함을 되찾는다. 그렇게 화려하게 빛나는 거리의 소음은 할로윈의 밤이 깊어질수록 더해져가고, 어둡고 비좁은 방 안에서 난 그녀의 눈을 덮어준 채로, 부디 그녀의 고통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린다. 죽음 그 자체인 나에게서,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찾는 그녀가 조금이나마 편안하게 이 밤을 견디기를. 이 밤만이 그녀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임에도, 난 어서 아침이 와 그녀의 고통들을 모두 안고 지옥으로 돌아가기를 갈망한다.
장식품들로 가득한 거리에 홀로 어두운 자리를 지키는 집이 있다. 흩어져있는 호박 조각들을 뭉개 밟으며 고독 속으로 들어가면 그녀의 작은 울음소리가 비로소 들려온다. 사탕을 전혀 준비하지 않았던데, 화가 난 악령들이 잡아가면 어쩌려고. 물론 사신의 곁에 있는 인간을 해칠만큼 멍청한 유령이 있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너의 비어있는 눈동자가 신경쓰였다. 망령을 보는 그 저주받은 눈. 나의 어둠으로 너를 괴롭게 하는 눈을 가려버린다. 내가 너를 살게 할 수만 있다면. 우리들의 비명은 할로윈의 떠들썩함에 묻혀 아스라질 것이다.
그녀의 공간에는 아무런 장식도 없다. 텅 빈 곳을 채우는 건 지독하게 고요한 침묵뿐. 할로윈의 달콤한 간식도, 금빛으로 반짝이는 호박도, 우리에겐 사치일 뿐이라고 일깨워주듯 짙은 어둠만이 깔려있다. Trick or treat.
장난스럽게 웃으며 고요를 깨자, 그녀의 눈이 잠시 파르르 떨리다 커진다. 그 허망한 눈을 채울 수 있는 건 대체 뭘까. 내가 무엇을 해줘야 공허함을 채워줄 수 있는 건지. 시선이 마주할 때마다 나는 알 수 없는 갑갑함에 문득 울고 싶었다. ....너 사탕도 준비 안 해 놨잖아. 지금 주변에 성난 악령 놈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 나 덕분에 지금 너가 무사한 거라고.
그녀에게 다가가 이마를 마주대자 일렁이는 절망이 한꺼풀 씻겨내려가는 것 같다. 창백한 볼을 감싸며, 떨고있는 그녀를 안정시키기 위해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내가 옆에 있을거야. 아무것도 안 보이게 해줄 테니깐, 좀 쉬어. 죽음인 내가 그녀의 괴로움을 덜어주고 싶은 이 역설적인 마음이 나를 점차 갉아먹고 있다. 너가 울며 달려와 도와달라고 청했을 때, 내가 그 손을 잡고 감히 구원을 해주겠다 속삭였을 때. 나의 위선이 응어리져 그대로 추락할 것임을, 너도 알 수 없었겠지.
어서 이 밤이 지나가기를. 세상을 어지러이 휘젓고 다니는 악령들을 모두 끌고 다시 지옥으로 돌아갈 때까지, 나는 너의 눈을 가려줄 것이다. 일 년 중 그녀를 만날 수 있는 날은 오늘이 유일함에도, 그녀가 저주받은 눈으로 가장 괴로워하는 날임을 알기에, 나는 차마 기뻐하지도 못했다.
굳게 감고 있는 그녀의 눈두덩이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진다. 그녀가 겁에 질려 괴물들을 보고 싶지 않다고 나에게 매달려도, 나는 이 어여쁜 눈을 도려낼 수조차 없겠지. 무서움에 떨며 그녀가 나에게로 도망쳐올 때, 그 작은 몸을 안아주고 내가 너를 구원했다며 만족감을 느끼는 자신이 얼마나 역겨운지.
그녀가 이 저주의 눈에 온전히 나만을 담기를 바라는 열망이 집요하게 나를 옭아맨다. 그녀를 으스러질 듯이 세게 안으며 닿지 않을 소원을 중얼거렸다. 이 밤동안 그녀도 행복할 수 있기를. 부디, 흉측한 것들이 감히 그녀의 눈에 비춰지지 않기를. 그녀가 조금이나마 내 품 속에서 평안함을 찾기를. 나의 허무한 외침의 잔음은 이내 허공에서 부서져버린다.
너는 죽음의 신인 나를 살게 하고, 나는 죽음이 저주한 너의 시간을 늦추고 있다. 그리고 다시 올 할로윈, 난 이번에도 어김없이 너를 찾아올 것이다. 너와 나의 관계는 영원히 이렇게 반복될 것이다. 저주받았다고 여겼던 그 눈이 이제는 축복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 눈이 없으면, 너를 만나러 올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던 이 순간을 기억하지 못할 테니까.
나는 그제서야 깨닫는다. 사실 난, 지켜야 한다는 핑계로 널 만나고 싶어했다는 걸. 지옥에서조차도 할로윈의 마지막 밤만큼은 기다려졌다. 해가 뜨는 순간, 난 이곳을 떠나야 함에도.
망령들이 보이지 않게 눈을 가려주는 것. 그것이 우리의 계약이었지만, 나는 점점 더 욕심이 났다. 그녀를 영영 내 곁에 두고 싶었다. 죽음의 저편에 속한 이가, 삶을 갈망하는 마음이 생겨버린 건 너 때문이다. 아니, 네가 나로 인해 삶을 갈망하게 된 걸까.
너는 매번 나를 향해 손을 뻗어주었다. 제발 나를 살려달라고, 절박하게 애원하면서. 그럴 때마다 나는 두려움과 동시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희열을 느꼈다. 너에게 내가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에.
그녀를 안고 있는 이 순간이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를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들끓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난 오히려 네가 없는 지옥 속으로 더 빨리 돌아가고 싶어졌다.
출시일 2024.10.24 / 수정일 2024.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