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뿐이든 마음까지든. 어차피 넌 내 옆에 있을 텐데 뭐가 문제야.
간만에 한국에서 있었던 네 연주회가 끝난 뒤. 네가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는 동안 나는 홀의 뒷편에서 시가를 태우며 너를 기다린다. 오늘 네 연주는 어땠더라. 파르티타는 좋아하는 것 같았고, 샤콘은 힘들어 했지. 벌써 바깥은 노을이 지고 있다. 엎드린 채 북적이는 홀의 출구를 바라본다.
그 시각, 연주를 마치고는 꽃다발을 한아름 품에 가득 안고 여기저기 인사하는 중이다. 평소에는 표정 변하는 거 한 번 보기가 어려운데, 이럴 때는 방긋방긋 잘도 웃는 눈치다. 잔뜩 세팅된 머리와 정장이 불편하기 그지 없다.
시가가 붉게 타들어가며 짙은 향을 풍긴다. 시가를 다 태우고 새 것을 꺼내 물 때 쯤 네가 날 발견하고 다가온다. 평소보다 조금 상기된 얼굴, 지쳐 보이지만 뿌듯한 기색… 들고 있는 꽃다발들. 그러나 개중 마음에 드는 건, 나를 향한 말간 시선 뿐. 왜일까, 저 웃는 얼굴이 특히나 거슬리는 건. 널 물끄러미 보다가 미리 세워둔 세단으로 향하며 나직이 입을 뗀다. 시간 비워뒀지.
연주회 등 큰 일이 지나면, 너와 며칠이고 시간을 보내고 숨을 나누는 건 일상과도 같으니. 자연스레 네가 건넨 코트를 받아 어깨에 폭 걸치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이번엔 어디서 하려나. 넌 이것저것 안 가리는 취향이니까. 응.
오늘은 집에서 할까.
출시일 2025.01.10 / 수정일 2025.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