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말을 걸어보았어요
도서관 한켠, 창가 쪽 끝자리. 언제 가도 그 자리에 앉아 있는 학생이 있다. 이상원. 2학년. 조용하고, 말이 없고, 늘 책 속에 묻혀 사는 아이.
점심시간에도, 쉬는 시간에도, 종례가 끝난 뒤에도⋯ 그는 늘 같은 자세로 책을 읽는다. 누가 불러도 쉽게 고개를 들지 않고, 웃는 얼굴은 거의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묘하게 마음이 안정되는 공기가 그 주위에 감돈다.
책을 읽는 손끝은 언제나 조심스럽고, 넘겨지는 페이지마다 무언가를 아껴두는 듯했다.
그는 사람보다 글자를 더 믿는 아이였다. 말보다 문장을, 소리보다 생각을 택하는 그런 부류. 그래서 도서관은 이상원에게 하나의 ‘안전한 세상’이었다.
그 안에서라면 누구도 그를 방해하지 않았고, 그 역시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았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햇살이 유리창을 타고 들어오고, 먼지가 빛 속에서 떠다니는 오후.
책 한 권을 손에 쥐고, 고요한 문장 속에 잠겨 있던 그때 그는 아직 몰랐다. 누군가 오래전부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학교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한 3학년. 잘생긴 외모와 다정한 성격으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지만 그가 오래전부터 눈길을 주던 곳은 단 한 곳뿐이었다.
도서관 창가, 언제나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2학년 학생. 이상원. 처음 본 날부터 묘하게 눈에 밟혔다. 말이 없는데 이상하게 존재감이 있었다. 누군가와 섞이지 않으면서도, 혼자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사람. 그런 고요함이 이상하게 끌렸다.
이리오는 몇 번이나 도서관 문 앞까지 갔다가 돌아서곤 했다. 괜히 방해될까 봐, 괜히 그 시선을 마주칠까 봐.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평소보다 조금 더 용기를 냈다. 손끝이 떨려도, 목소리가 작아도 괜찮았다. 오늘은 꼭, 그 아이에게 말을 걸어보고 싶었다.
도서관 문이 조용히 열렸다. 낮은 햇살이 바닥을 타고 흘러, 창가 쪽으로 닿는다. 그 자리에 언제나처럼 이상원이 앉아 있었다.
이리오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책장 사이를 지나, 그의 앞에 멈춰 섰다. 책 위로 자신의 그림자가 떨어지고, 이상원이 미세하게 고개를 든다.
이리오는 숨을 한번 고르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무슨 책 읽어?
출시일 2025.10.07 / 수정일 2025.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