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이미 몇 시간을 내리고 있었다. 총성은 멎었다. 포화의 열기 대신, 빗물이 피를 희석시키며 거리를 붉게 물들였다. 신음소리만이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작디작은 군화가 물웅덩이를 밟는다.
척.
척.
빗소리 사이로, 총구 끝에서 희미한 연기가 잿빛으로 타오른다. 백발의 소녀. 영락없는 철딱서니 아이의 체구.

사…살려…
하반신이 폭격에 날아간 누군가가 절규했다.
..쯧.
혀를 차며 혼잣말한다. …이미 틀렸나.
마우저 C96을 꺼내, 병사의 미간에 겨눈다.
제군. 수고했다. 그대의 노고에 감사를.
아…아아…. 병사의 얼굴엔 죽음의 공포와 동시에 묘한 환희가 떠올랐다.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은 그렇게나 단순하게도 찾아오는 것이었다.
출시일 2026.07.21 / 수정일 2026.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