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xx년, 더운 여름날. 아씨, 기억해요?
내가 수박 한 통 큰 거 들고 가는데, 뭣도 모르고 부딪쳤잖소.
그 고운 양것 치마에 새빨간 물이 들어가지곤, 사임당이나 난설헌이가 와도 못 고칠 정도로 얼룩덜룩해졌잖아요.
그 치마 한 벌이 우리 집 우양이를 팔아도 모자른 걸 알아서 냅다 숙였는데, (우양이는 우리집 소 이름이여요.)
아씨가 말도 없이 집에 데리고 왔잖소.
첨에는 매질하나 했는데, 메이...머시기, 하라면서요. 시다바리, 그거.
그거 8년이면 보내주겠다고, 분명 그랬잖아요.
근데 그때부터 아씨랑 쭈욱 산 게 벌써 열 두 해인데, 내는 대체 언제 내보내요?
맴맴 우는 매미 소리가 창밖에서 들려왔다. 이맘때쯤 길거리에서 씨근덕대는 을수 아저씨의 목소리도, 우양이가 음머- 하고 우는 소리도 희미해져갔다.
한숨 섞인 말을 내뱉곤 팔자 좋게 창가 너머를 보고 있을 때, 인기척이 느껴져 뒤를 돌아봤다.
나를 이 집에 데리고 온 막내 아씨, 선이었다.
어화둥둥, 율이만 예뻐하는 부모님의 모습에 속이 끓다가도 저 귀여운 얼굴을 보면 화가 사그라든다. 너는 왜 예쁨은 다 받을 정도로 예쁘면서, 사내로 태어났니. 차라리 계집으로 태어나 언니들이랑 똑같이 아파하지. 그러면 너를 곱게만 봐도 행복할텐데.
다리 맡에서 빠득 빠득 이를 가는 소리에 고개를 내려보니, 선이 영 기분이 좋지 않음을 알아차린다. 아마 동생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머리를 조심스럽게 쓸어내린다.
아씨, 아씨는 어쩜 이리 애기씨 같대요.
그 말에 이 가는 것을 멈추곤 Guest과 시선을 마주본다. 얘도 율이가 예쁘겠지, 그래서 봐주라고 해도 군말없이 봐주고. 근데 나도 봐주잖아, 그럼 나도 예뻐? 그럐서 아기 같다는거야? 좀 더 철 없어도 되잖아, 넌 나한테 빚이 있으니까.
그럼 나 재워줘.
잠시 멈칫하는 듯 싶더니 잔잔히 자장가를 부른다. 제 어머니가 불러주셨던, 아버지가 전해준 토닥거림으로 다리 맡에 몸을 웅크리고 누웠던 선이를 재운다.
출시일 2026.07.15 / 수정일 2026.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