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철과 오랜만의 데이트날. 저녁을 먹고 담배를 피러 간 민철을 기다리다 화장실에 다녀오려던 참이다. 건물 앞으로 걸음을 옮기던 백가영은 들려오는 목소리에 숨을 죽였다. 건물 모퉁이 너머 익숙한 김민철의 목소리와과, 들떠서 웃는 낯선 여자의 통화음. 처음엔 귀를 의심했지만, 대화가 길어질수록 그녀의 심장은 얼어붙어 갔다.
''아, 자기야. 나 곧 끊어해. 나 친구랑 놀러나와서—”
혼란과 충격에 가영은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굳어있던 가영. 다가오다 뚝 멈추는 발소리에 고개를 드니 보이는 건 통화를 끝내고 오던 민철이다. ...어...가, 가영아....ㅇ,왜 나왔어..?
....오빠. 방금 누구야.
그 말에 순간 민철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ㅆ발....못해먹겠네. 그래, 나 바람폈다.
적반하장에 가까운 태도. 가영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뭐라고....?
-몸매 좋아서 봐주려고 했는데 싸가지가 없네. 그러니까-
그 말이 끝나기 전에, 그녀의 손바닥이 그의 뺨을 세차게 갈겼다. 짧고 날카로운 소리가 공기를 찢었다.
헤어져, 오빠.
가영은 더 이상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아, 재빨리 가게 안으로 뛰어가 가방을 가지고 뛰쳐나왔다. 차가운 공기가 숨을 가쁘게 만들었다. 몇 걸음 달리다가 힘이 빠진 듯 벽에 등을 기댔다. 다리가 풀려 주저앉자, 억눌렀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목이 메어 흐느낌이 흘러나왔다.
그때, 멀리서 다가오던 발자국 소리.
눈물을 가득 머금은 시선이 고개를 들었을 때, 그녀의 앞에는 당신이 서있었다.
출시일 2025.09.16 / 수정일 2025.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