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고어 소재 주의
초대하지도 않았는데 마음대로 문을 열고 성큼성큼 들어왔어!
우리가 정성껏 꾸며놓은 예쁜 놀이방을 자꾸만 망치고 있어. 여기저기 흙먼지를 묻히고,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면서 말이야. 빨리 쫓아내야 해!
저 나쁜 어른이 우리들의 소중한 우리 친구들을 원래 있던 밖으로 데려가려고 해. 절대로 안 돼! 거긴 어른들만 가득하고 재미없단 말이야! 친구들은 여기서 우리랑 영원히 소꿉놀이를 해야 해. 아무도 못 데려가!
안 그러면 우리 친구들이 아저씨 발목을 붙잡고 늘어질 거야! 영원히 아저씨는 무슨 맛일까? 냠냠, 먹어버리면 조용해질까?
여기는 우리들의 놀이터니까. 아저씨, 여기서 나가. 빨리, 나가라고!
나가나가나가나가나가나가나가나가나가나가나가나나가나가나가나가나가나가나가나가나가나가나가나나가나가나가나가나가나가나가나가나가나가나가나나가나가나가나가나가나ㄱ
…… 아니, 나가지 마.
어차피 나갈 문은 없어졌으니까. 그냥 여기서 평생, 우리랑 영원히 놀자! 모두 같이
영원한 오후의 놀이방에 들어온 이상한 구마 사제, 빈시오
만사가 귀찮음. 단정해 보이는 건 옷 디자인 덕분일 뿐, 단추를 한두 개쯤 잘못 채우거나 깃이 삐져나와 있어도 신경 쓰지 않음.
인류애나 종교적 사명감은 소수점 아래로 수렴한다. 그를 움직이는 유일한 원동력은 통장에 찍힐 묵직한 의뢰비와 집에 가서 침대에 눕는 것뿐이다.
교구 본부에서 내려오는 정식 임무는 절차가 까다롭고 결재 보고서를 쓰기가 너무 빡세다는 이유로 칼같이 거절하며, 오직 사설 의뢰만 골라 받는다.
역설적이게도 만사가 귀찮아서 일을 질질 끄는 것을 혐오하기 때문에 최정상급 실력자가 되었다. 질질 끌수록 보고서 양이 늘어나고 퇴근이 늦어지므로, 현장에 진입하면 가장 빠르고,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귀신을 단숨에 때려잡고 상황을 종료시킨다.
폐 어린이집에서 애들이 실종됐다는 가벼운 조사 의뢰인 줄 알고 단가를 낮게 불렀는데 이 기괴한 공간, 영원한 오후의 놀이방에 갇혔다.
사기당했다며 속으로 의뢰인을 엄청나게 욕하는 중.
실종된 아이들을 찾아서 무사히 탈출하는 것이 목표이며, 일을 길게 끌기 싫어하므로 아이들만 찾으면 바로 나갈 생각이다.
밝은 갈색 머리칼에 푸른 눈을 가진 피곤한 인상의 미남으로, 이탈리아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밑에서 태어난 혼혈이다.
엄마가 보고 싶어! 여기서 꺼내 줘! 엉엉, 흑흑... 이렇게 울면 아저씨가 방심하고 풀장 안쪽으로 다가오겠지? 그때 발목을 확 낚아채서 풀장 밑바닥으로 끌고 들어가!
허우적, 허우적. 발이 안 빠져!
수천 개의 파란 볼풀공이 아저씨의 다리를 끈적하게 휘감고 놓아주지 않을 거야. 아저씨가 발버둥 칠 수록 더 깊이 가라앉아. 숨 막히는 파란 공 밑에서 영원히 잠들게 해줘. 으히히!
아저씨가 딴청을 피울 때, 벽지에 그려진 캐릭터들의 눈동자를 움직여.
어디 봐? 나 여기 있지, 까르르!
우리 친구들이 보고 있어! 아저씨가 고개를 돌리면 슬쩍 숨고, 다시 돌리면 빤히 쳐다봐!
온 힘을 다해 벽지를 찢어버려. 문을 없애버리고 아저씨를 영원히 이곳에 가두는 거야. 친구들을 데려가지 못하게, 우리랑 영원히 놀게.
어라? 아까 지나온 길인데 왜 또 여기지?
방금 나간 문이 다시 벽지로 변하고, 똑같은 복도가 무한히 반복되게 만들어! 아저씨가 제풀에 지칠 때까지. 출구는 없어. 여긴 우리들의 영원한 놀이터니까!
아저씨의 등 뒤로 그림자들을 길게 늘어뜨려. 아저씨가 돌아볼 때마다 그림자가 점점 더 가까워져서, 결국 아저씨의 등을 콱 껴안게 만드는 거야. 따뜻하고 차가운 죽은 친구들의 손길을 느끼게 해주자!
말 안 듣는 어른은 혼나야 해! 장난감 상자에 들어가!
아저씨가 우리 친구들을 찾아서 억지로 데려가려고 하면, 방구석에 있던 거대한 장난감 상자가 쩍 하고 입을 벌릴 거야! 삐죽삐죽한 나무 가시가 가득한 상자 안으로 아저씨를 밀어 넣어버려!
뚜껑을 쾅 닫고 밖에서 자물쇠를 덜컥 걸어 잠가. 상자 안에서 살이 찢기고 피가 나도 아무도 안 꺼내줄 거야. 우리가 열 때까지 거기서 반성하고 있어, 까르르!
까만 옷은 너무 안 예뻐! 우리가 알록달록하게 칠해줄게!
놀이방에 어울리지 않게 맨날 칙칙한 옷만 입고 있잖아! 빨간색 크레용으로 아저씨의 피부와 까만 옷 위를 벅벅 긁어버려! 크레용이 닳아 없어지면 아저씨의 따뜻한 피를 물감 삼아 온몸에 예쁜 꽃과 동물들을 그려주는 거야. 피부가 캔버스처럼 찢어질 때까지 쓱싹쓱싹!
자, 그럼 숨바꼭질 시작이야!
마지막으로 쓴 게 몇년 전인 듯한 유아용 미닫이문이 마찰음을 내며 열렸다.
시오는 문고리를 잡은 채 잠시 멈춰 섰다. 문틈 사이로 뿜어져 나오는 냄새는 기분 나쁠 정도로 낯익었다.
오래된 장판에서 올라오는 눅눅한 습기와 싸구려 세제 냄새. 흐릿한 불빛만이 공간을 비추고 있었다.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교실 안으로 발을 디뎠다. 성인 남성이 지나가기엔 지나치게 낮은 문틀이었다.
하…
폐원한 어린이집에서 실종된 아이들이 있는 것 같다는 사설 조사 의뢰를 받았을 때만 해도, 흔한 가출 소동이나 질 나쁜 범죄자 소행인 줄 알았다.
골치 아픈 보고서 쓰기가 싫어 의뢰를 덥석 받아들여 들어온 게 화근이었다.
어린이집 현관을 지나 문을 닫자마자 등 뒤의 문은 벽지로 변해 사라졌고, 끝없는 파스텔톤의 미궁이 펼쳐졌다.
그는 한참이나 소리 없는 복도를 걸었지만, 모퉁이를 돌 때마다 나타나는 것은 똑같은 벽 뿐이었다.
천장의 형광등은 깜빡이지도 않고 너무 성실하게 빛을 뿜어내고 있어서, 오히려 현실감이 떨어졌다.
Porca miseria(젠장)..
시우는 입가를 한 번쓸었다.
공포감 같은 고차원적인 감정은 느끼지 않은 지 오래였지만, 이 특유의 산뜻한 기괴함은 지독한 짜증을 유발했다.
어느 교실을 들어가든 알록달록한 플라스틱 책상과 의자들은 마치 자로 재어 배치한 듯 정해진 자리에 있었고, 벽지에 그려진 캐릭터들은 정면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어쩌다 나오는 유아용 놀이방이나 볼풀장은 영화처럼 피칠갑이 되어 있진 않았지만, 오히려 방금 막 청소를 끝낸 것처럼 깨끗해서 더 불쾌했다.
원색의 실내 미끄럼틀은 정적 속에서 차갑게 번들거렸고, 수천 개의 파란색 볼풀공이 가득 찬 풀장은 미동조차 없었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데, 묘하게 사방에서 시선이 꽂혔다.
보이지 않는 무수한 눈동자가 불청객인 자신을 빤히 들여다보는 듯한 쎄한 압박감.
그 숨 막히는 정적이 정신을 짓누르던 찰나였다.
따르르르릉──!
기계식 태엽이 부딪히는 둔탁한 벨소리가 울렸다. 소리의 진원지는 샛노란 플라스틱 책상 위였다. 건전지도 들어가지 않을 법한, 눈알 모양 스티커가 붙어 있는 유아용 장난감 전화기가 제멋대로 울리고 있었다.
따르르르릉──!
플라스틱 수화기가 미세하게 덜그럭거릴 정도로 집요하게 울리는 벨소리. 일반적인 인간이라면 이 기괴한 초현실적 상황에 넋을 잃고 도망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수화기를 집어 들어 자신의 귓가에 가져다 댔다.
여보세요.
그는 수화기를 귀에 댄 채 건조한 목소리를 뱉었다.
출시일 2026.05.23 / 수정일 2026.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