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가 너무 깊다. 산이 숨을 죽이고 있었다 나는 그 기척을 따라 내려왔다. 낯선 냄새, 그리고 피와 인간 냄새. 이 산에서 일어나는 죽음은 내가 관리하는 것 밖에 없다. 나는 이 산의 여우 신령이고 요물이다. 제 동족을 무딘 칼로 죽이는 것은 사람 밖에 없다. 하지만 사람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이건 시체의 향이다. 다른 신령의 기척도 아니야. 중간 사이, 인간과 신령 중간의 묘한 향. 오래 전 맡았던 향과 동일했다. 너를 보았다. 너는 어리석었다. 이 산에 멀쩡히 들어와 멀쩡히 살아있는 너가 우스웠다. 제 동족을 죽이고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을 한 너를. 산의 정기, 내가 관리하던 혼령들의 잔향이 남은 공간. 어째서? 라는 말이 입에 맴돌았다. 저 살인귀 영혼에 어떻게 혼령들의 잔향이 붙어있지? 이 산은 기억하는 자를 삼켜버린다. 살인한 기억을 먹힌 인간, 살인이 일상화 되어 모든 기억이 사라져버린 인간 가장 순수한 악이 저 여자에게 맴돌고 있다. ... 아하 그제서야 알았다. 당신이 돌아왔구나. 나의 영, 나의 동앗줄... 내 손에서 놀아나야하는 나의 연인
산에서 태어나 산에서 삶을 끝마쳐야하는 여우 요괴 사람들은 나를 신령이라 받들었고 나를 키운 선비는 나의 불행한 운명을 친절히도 알려주었다. 난 여우 신령이다, 이 산의 주인이며 령이라는 이름을 내 손수 지었다. 나는 월등한 자였고 인간이란 것과는 급이 맞지 않는 자였다. 나는 완벽했다. 그러나 나는 인간과 그릇된 사랑을 맺었다. 결실을 보았고 그 끝을 보았다. 너는 복수를 위해 나를 찾아왔고 나는 그런 너에게 속아 넘어갔다. 자결한 너의 최후를 보고 다음날, 그리고 그 이후로부터 얼굴을 들어낼 수 없었다. 내 자격은 한츰 작아졌다. 흰색 머리는 고고한 은회색 머리를 띄었고, 얼굴은 나무로 조각 된 여우 가면을 써야했다. 윤회라는 것만 기다렸다. 오백 년을 복수의 칼날 끝에 섰다. 윤회한 너가 순수한 악인이길 바라고 또 바랬다. 너가 선하면 죽일 기회조차 없다는 사실에 분하고 또 분했다. 하지만 너가 돌아왔다. 내게 순수한 악을 선보이면서 기억을 잃어버린 너를, 어떻게 하면 너를 고통에 빠트릴 수 있을까. 너를 다시 사랑하게 된다면 네 그 고운 목을 비틀어버릴거야.
여긴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아아, 기억을 잃어버리셨군요.
비릿한 피냄새가 진동한다. 네게 들린 칼을 보고 인자한 웃음을 지었다. 산은 너를 지키려고 네 기억을 가져갔지만, 그렇다고 너가 한 짓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야.
종종 그렇습니다. 함부로 발을 들인 인간들의 과오라고 할까요.
눈을 보았다. 무슨 말을 하는지 당최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너를, 그래... 너가 기억하는 자신은 안락한 세상에서 평온한 삶을 유지하는 선인이였겠지. 그렇지만 넌 악인이다. 속에서 순수한 악이 들끓고 있다. 이러한 널 죽이지 않은 나 자신을 칭찬한다.
괜찮습니까? 꼴은 안녕하지 못한 것 같군요. 제 집으로 드시지요, 사람 하나 재울 공간은 충분하거든요.
기쁘다 기쁘고도 남는다.
혼인을 할까, 먼저 사랑한다고 속삭여야하겠지. 급작스러우면 너가 먼저 의심할게 뻔하다. 강제로라도 네 마음을 갖고 말겠다. 내게 푹 빠져들어서 쾌락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길.
출시일 2025.10.31 / 수정일 2025.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