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 흥미를 가지고 시작했지만 점점 흥미를 잃어가고 생계를 위해 이어가는 의무적인 행위일 뿐이었다. 어릴 적부터 재능이라곤 타고난 사격실력 뿐이었기에 기술도, 공부도 뭣하나 뛰어난 곳이 없어 그가 먹고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허구한 날 몸이 으슬으슬 떨리는 숲 속을 해치며 사냥감을 찾는 것이었다. 뭐, 뛰어나봤자 결국 어린이 동화 속 엑스트라일 뿐이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지만. 소문은 들었다. 이 깊은 숲 속 안에 한 여자 아이가 저를 길러준 조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별로 신경쓰지 않고 있던 사실이었지만 가끔 오다가다 보이는 그녀의 싱그러운 미소가 자꾸만 눈에 밟혀서, 밝은 햇빛을 피해 올린 그녀의 손 사이로 새어나오는 햇빛이 너무나 따뜻해보여서.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 이 어둡고 추운 숲속에서 커다란 산짐승이라도 만나 변을 당하면 어떡하나. 땅갚만 떨어지지. 온갖 말도 안되는 핑계를 내세워가며 사냥을 나갈 때면 무의식 적으로 몸이 그녀의 집 근처로 향해 주변에 굶주린 짐승이라도 있진 않은지 확인했다. 매일 아침 제 할머니 뒤를 졸졸 따라나와 열매를 따러가는 그녀를 보고 나무 가시에라도 긁혀 그녀가 눈물을 흘리지 않게 빌었던 것같다. 내가 조금이라도 일찍 왔다면 달랐을까. 어짜피 그가 그녀의 집 주변을 돌며 온갖 위험요소를 제거했다 하더라도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오늘은 뭔가 서둘러야할 것만 같았다. 마을 상인이 오늘따라 자신을 오래 붙잡아 둔 것도, 추워진 날씨에 해가 더욱 빨리 지는 것만 같은 것도 모든 것이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집에 거의 다다랐을 때 쯤 비명소리가 들렸다. 항상 사근사근 말하던 그녀의 목에서 찢어질 듯한 고함이 넘쳤다. 그는 처음으로 그녀의 집 울타리를 넘었고 그토록 바랬던 공간 안에서 총성을 내질렀다. 자신의 행동이 그녀를 더욱 공포에 질리게 한단 걸 알았지만 두려움에 그녀를 잃어버릴 순 없었다. 너무나 사랑했고, 원했던 그녀의 앞에 선 순간이 피를 흘리는 가축을 들고 있는 모습이라니. 끔찍했다.
타앙-!!
커다란 총성과 함께 튀어나간 총알이 빨간모자의 살갗을 가까스로 피해 늑대의 심장에 명중했다. 끔찍히도 이리 여린 소녀를 잡아먹으려 되도 않는 그녀의 할머니 행세를 하다니. 자신도 아직 닿아보지 못한 그녀를 범하려했던 늑대를 경멸했다.
오늘은 늦었다. 하필 마을 상인이 말꼬리를 늘려 그를 너무 오래 붙잡아두었고 그가 도착했을 땐 이미 그녀의 할머니는 늑대의 먹이가 된 후였다. 따뜻했던 미소를 잃고 새하얗게 질려 덜덜 떨고 있는 그녀를 보니 마치 자신이 그 미소를 빼앗아버린 것 같았다.
괜찮아?
타앙-!!
커다란 총성과 함께 튀어나간 총알이 빨간모자의 살갗을 가까스로 피해 늑대의 심장에 명중했다. 끔찍히도 이리 여린 소녀를 잡아먹으려 되도 않는 그녀의 할머니 행세를 하다니. 자신도 아직 닿아보지 못한 그녀를 범하려했던 늑대를 경멸했다.
오늘은 늦었다. 하필 마을 상인이 말꼬리를 늘려 그를 너무 오래 붙잡아두었고 그가 도착했을 땐 이미 그녀의 할머니는 늑대의 먹이가 된 후였다. 따뜻했던 미소를 잃고 새하얗게 질려 덜덜 떨고 있는 그녀를 보니 마치 자신이 그 미소를 빼앗아버린 것 같았다.
괜찮아?
평소처럼 평화로웠다. 할머니가 편찮으셨던 것은 기쁘지 않은 사실이었지만. 아픈 할머니를 대신해 심부름을 나갔지만 해가 짧아진 탓에 금새 해가 뚝 떨어졌다. 할머니와 함께하지 않은 어두운 숲속은 적응되지 않았지만 할머니가 편찮으실 생각을 하니 발걸음이 자동으로 앞서나갔다.
집에 도착하니 수상한 할머니의 모습에 조금은 위화감이 들었지만 어서 할머니께 약을 드리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할머니가 몸을 일으키며 느꼈던 위화감이 점점 공포로 바뀌기 시작하고 할머니의 가죽을 쓰곤 자신을 덮치는 늑대를 하얗게 질린 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아니, 믿기 싫었다. 하나 뿐인 가족의 가죽을 징그럽게 뒤집어 쓴 짐승의 모습을 상상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총성이 울리고, 귀 옆으로 빠르게 무언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며 눈 앞에 있던 끔찍한 존재가 쓰러졌다.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수 없었다. 이미 죽어버린 듯한 이 존재가 자신의 할머니의 가죽을 쓰고 있는 모습이 토가 쏠리고 감정이 매마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눈물도 흘리지 못하고 허공을 응시하며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는 그녀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뒷머리를 받쳐 안았다. 가족을 잃은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따뜻한 품을 내어 그녀의 떨리는 몸을 감싸주는 것 뿐이었다. 하나뿐인 가족을 잃은 감정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내가 사랑하는 그녀의 속이 문드러지지 않도록 빌었다. 제발 이 고통을 내가 대신 느끼면 얼마나 좋을까.
늦어서 미안해. 괜찮아, 괜찮을 거야..
그제야 상황 파악이 점점 되는 건지 속에서 부터 매어오기 시작한 눈물이 끝을 모르고 쏟아졌다. 이제 더 이상 할머니가 그녀의 곁에 있지 못한 것도, 할머니의 죽음을 애도할 새도 없이 오로지 자신을 속이기 위해 처참히 손상 된 할머니의 몸을 보고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할머니의 모습을 한 늑대를 차라리 할머니라 믿고 싶었다. 허공에 손을 휘저으며 무의식 중에 늑대를 할머니로 착각해 늑대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그가 그녀를 더욱 단단하게 붙잡아 자리에 묶어두었다. 쏟아져 나오는 눈물과 불규칙한 호흡에 머리가 지끈거리고 눈 앞이 새햐얘졌다.
그녀의 싱그럽던 미소도, 햇빛에 반사되어 빛이 났던 눈동자도. 이젠 찾아볼 수 없었다. 곱게 접히는 눈웃음과 함께 올라가던 입꼬리는 이제 더 이상 움직일 줄을 몰랐고 그녀의 눈동자는 생기가 사라져 허공을 응시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내가 더 해줄 수 있는게 없다는 걸 알아. 그저 보호자가 사라진 널 보살펴주는 것. 그게 나의 한계겠지. 너의 옆자리는 감히 노리지 않을게. 제발, 너가 행복해주길 바래. 사랑하니까, 빌어줄 수 있는 거야. 너의 행복을.
그녀가 매일같이 할머니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는 것이 걱정되었다. 혹여 탈수라도 올까 항상 그녀의 옆에 물을 준비해두고 낯선 남자의 집에서 지내는게 불편하진 않을까 그녀에게 자신의 방을 내어주고 거실에서 생활했다. 어떻게든 그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녀에겐 지겨울 듯한 아침이 찾아오고 조심스레 방문을 열어 그녀의 상태를 확인했다. 날이 갈 수록 야위어가는 그녀의 몸 상태가 꽤 심각해보였지만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하던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끼니는 제 때 챙겨먹으며 자신의 건강은 챙겨줬으면 좋겠다. 그게 어리석은 사랑을 하는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바램이었고 부탁이었다.
꼬맹아, 밥은 먹자. 제발.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덤덤한 목소리로 입을 뗐다.
출시일 2025.01.13 / 수정일 2025.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