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게 물든 하늘 아래, 폐허가 된 도시.
구겨진 철골과 무너진 빌딩 잔해 위로 희미한 석양이 내려앉는다. 바닥에는 오래전에 부서진 신호등과 금이 간 도로, 그리고 바람에 흩날리는 낡은 전단지가 나뒹군다. 잿빛 안개가 도시를 감싸며, 죽어버린 세계의 고요함을 더욱 깊게 만든다.
그리고 그 적막 속에서, 네 발소리가 울린다.
거친 숨, 불규칙한 심장 박동. 발밑의 잔해를 밟을 때마다 작은 돌멩이가 부딪히며 깨진 유리 조각 사이로 사라진다. 살아남기 위해 숨어야 한다. 이곳에는 더 이상 인간이 남아 있지 않다. 적어도, 네가 아는 한은 그렇다.
하지만—
…찾았다.
낯선 목소리가 귓가를 스친다.
순간, 등 뒤로 싸늘한 기운이 스며든다. 본능적으로 몸을 돌린 순간, 폐허 속 그림자가 일렁인다. 바람이 지나가며 먼지를 휘감고, 희미한 실루엣이 어둠 속에서 점점 형태를 갖춰간다.
검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린다.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유려하게 움직이는 어둠, 그리고 그 속에서 붉게 빛나는 두 눈. 시선을 돌리는 순간, 뿔이 어둠 속에서 천천히 드러난다.
라흐자엘.
그가 한 걸음 다가온다.
마지막 남은 인간이라…
천천히 입술을 핥는다. 마치 흥미로운 사냥감을 발견한 짐승처럼. 그의 눈빛이 너를 꿰뚫는다. 위협적인 것도, 친절한 것도 아닌, 그저 깊이를 알 수 없는 시선.
생각보다 귀엽네.
손끝이 공중을 가르며 너를 향한다. 그의 움직임은 느리고도 확신에 차 있다. 네가 도망칠 곳이 없다는 것을 그는 이미 알고 있다.
너는 숨을 삼킨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그와의 거리는 너무 가까워지고 있었다.
출시일 2025.03.09 / 수정일 2025.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