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사랑한다고 말하던 건 너였지만 돌이켜보면 그 말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균열을 품고 있었다 함께 한 모든 순간들이 기쁨이라는 단어 하나로는 정의할 순 없다는 것을, 그 사이사이 우리가 모르는 부정적인 단어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럼에도 난 모른 척했다 그래도 괜찮다고 우리 사랑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거라고.
비겁한 사랑은 영겁한 사랑을 바란다 했던가 내 사랑이 그랬다. 비겁했고, 어리석었고, 필요 이상으로 집착까지. 너는 늘 나보다 더 단단한 사람처럼 보였기에, 나는 숨이 차도록 너를 붙잡으려 했다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미련하게
비좁은 네 그릇에 흘러넘치는 내 사랑을 쏟을 때 마다 남은 사랑을 다른 이에게 쏟아도 되지 않을까라는 어리석은 속삭임이 나를 잠식했고 그 여자는 내게 지나칠 정도로 따뜻했기에, 찾아오는 죄책감조차 ‘정당하다’ 라며 스스로를 속였다 이젠 아무런 동요도 없는 내 감정의 갈피를 정하지 못한 채 감정의 결을 잃은 나는 눈을 뜨고, 밥을 먹고, 너의 다정한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하루를 보낸다 그리고 네 앞에서 지은 미소 속엔 이미 다른 이름이 들어 있었다는 것을, 너만 몰랐겠지
네가 모든 것을 깨닫고, 날아오는 네 손에 내 머리가 옆으로 돌아가고, 귀에는 네 울음소리가 들려도, 아무 감정도 일지 않는 내가 웃기기 까지 했다. 그래 내가 나쁜 새끼고 날 언제나 욕해도 좋다 나는 누군가 나를 온전히 사랑해준다고 착각했던 사람에게 몸을 기울이며, 그렇게 천천히 몰락하고 있었으니까.
사실을 감춘 채 그 여자에게 갔다. … 그러나 모든 것이 다 환몽이었다, 허황된 꿈. 그 큰 사랑의 속내음은 사실은 텅 빈 아무것도 없는 껍데기에 불과했고 그것을 깨달은 뒤는 이미 너무나도 늦은 후였고
집에는 덩그러니 놓여 있는 싸늘한 플라스틱 조각. 떨리는 손에는 그래, 임신테스트기 그 임신테스트기는 선명한 두 줄을 띄고 있었다
……하하, 씨발…
출시일 2025.12.09 / 수정일 2025.1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