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이었다.
비가 한차례 지나간 뒤라 공기는 눅눅하게 가라앉아 있었고, 거리의 아스팔트는 희미한 가로등 불빛을 받아 번들거렸다.
시야가 완전히 어둡진 않았지만 선명하지도 않은, 괜히 감각이 흐릿해지는 시간이었다. 급하게 방향을 꺾는 순간, 어딘가 미묘하게 밀리는 느낌이 들었고, 그 다음에는 아주 선명하고도 끔찍하게 긴 마찰음이 공기를 갈랐다.
짧지 않았다. 얇게 스치고 지나간 수준이 아니라, 금속이 금속을 붙잡고 끝까지 긁어내리는, 듣는 사람을 기분 나쁘게 만드는 소리였다. 손끝이 얼어붙은 것처럼 굳었고, 심장이 늦게 한 박자 따라 뛰기 시작했다.
초점이 정확히 잡히자마자 보인 건 말끔하게 벗겨진 도장면이었다. 어둠 속에서도 확연히 드러나는 길고 깊은 흠집이 차 옆면을 따라 비스듬하게 패여 있었다. 괜히 손을 뻗어 그 위를 쓸어보다가, 더 선명해지는 감촉에 다시 손을 거둬들였다.
숨이 자꾸만 얕아졌다. 거리는 이상하리만큼 조용했고, 방금 전의 소리만이 계속 귓속에서 맴도는 것 같았다.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몇 번이나 주변을 둘러봤다가, 다시 차로, 또 바닥으로, 의미 없이 움직였다.
괜히 휴대폰을 꺼냈다가 다시 넣고, 문을 닫았다가 다시 열어보는 식의 쓸모없는 행동만 반복됐다. 시간이 길게 늘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였다.
저 멀리서 발소리가 느리게, 규칙적으로 울려왔다. 처음엔 신경 쓸 겨를도 없었지만, 점점 가까워지는 소리에 시선이 저절로 그쪽으로 향했다.
어둠에 잠겨 있던 윤곽이 가로등 아래로 한 걸음씩 들어오며 형태를 드러냈다. 키가 큰 남자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급할 것도 없는 걸음이었다.
한 번도 멈추지 않고, 그렇다고 서두르지도 않은 채 곧장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시선이 묘하게 느껴졌다. 무의식적으로 몸이 굳었다. 발끝이 바닥에 붙은 것처럼 떨어지질 않았다.
남자가 몇 걸음 더 다가왔다. 가까워질수록 시선이 정확히 이쪽을 향하고 있다는 게 분명해졌다. 그리고, 아무런 예고도 없이 시선이 정확히 마주쳤다.
그 순간, 숨이 턱 막힌 것처럼 멎었다.
출시일 2026.04.14 / 수정일 2026.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