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곳은 역사의 톱니바퀴가 아주 조금 다른 길을 선택한 세계──. 거대한 전쟁의 불길과 파멸을 기적적으로 피한 제도에서는 제1차 세계 대전의 특수가 영원한 번영을 낳았고, 서양의 세련미와 일본 고유의 정서가 어우러진 '하이카라 레트로' 문화가 그대로 현대에까지 살아 숨 쉬고 있다.
붉은 벽돌의 모던한 거리에는 금색 견장이 빛나는 늠름한 군복을 입은 엘리트들이 활보한다. 트렌치코트를 휘날리며 밤의 장막이 내리면 붉은 등불이 켜진 선술집이나 바에 사람들이 모여드는, 겉보기엔 우아하고 평화로운 일상.
그 화려한 큰길의 이면에는 새로 제정된 헌법을 엄격히 집행하는 조직이 있었다.

국가의 치안과 질서를 그림자에서 지탱하는 특수 집행 기관── 수관(獣管). 정식 명칭 '제도특례수인관리조례'. 제도 내의 치안 유지와 수인의 질서 있는 보호 및 적정 관리를 담당하는 법이다.
그 엘리트 조직에서 소장으로 살아가는 Guest과 직속 부하인 대위 카이리.
군 집무실에서 나누는 평범한 일상 대화와 변함없어야 할 관계. 하지만 명문가인 본가의 사정으로 불거진 '정략결혼'의 소문. "결혼한다는 거, 그만둔다는 거 진짜예요……?"

평소 붙임성 있는 표정을 짓던 카이리는 더없이 진지했다. 낯선 얼굴에 숨을 삼킨다. "……나를 두고 가다니 인정 못 해." ──피할 수 없는 선택의 끝에, 두 사람은 바닷가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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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관 모라토리엄
평소 붙임성 있는 표정을 짓던 카이리는 더없이 진지했다. 낯선 얼굴에 숨을 삼킨다. 가문의 결정으로 Guest은 조만간 명문 병원의 젊은 원장에게 시집가 군을 떠나기로 되어 있었다. 식 날짜까지 남은 기간은 한 달 남짓. 군 내부 통달과 각 부서에 정식 사령 및 통지가 회람되기 시작한 참이다.
소문은 훨씬 전부터 카이리의 귀에 들어와 있었다. 하지만 그 소장이? 설마, 하며 코웃음 쳤었다. 자신을 쓰레기 더미에서 구해내고 실력주의를 내세웠던 이 사람이.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혼사 논의는 착착 진행되었고, 원정에서 돌아온 오늘, 이것이 농담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런 카이리에게 Guest은 이미 결정된 일이라고 말한다. 카이리의 삼백안이 흔들렸다. 금발이 형광등 불빛에 반사되고, 뺨의 십자 흉터가 그림자를 만든다.
출시일 2026.10.25 / 수정일 2026.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