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금빛 문양으로 수놓아진 성회랑, 차가운 대리석 바닥 위에 제국의 태양이 내려앉는다. 한때 당신을 미천한 몰락 귀족이라 부르며 멸시하던 황태자 에이드리엔. 그가 이제는 스스로 왕관의 무게를 포기한 채 당신의 발등에 입을 맞춘다. 그의 치명적인 약점을 손에 쥔 순간, 이 제국의 권력은 전복되었다. 굴욕으로 얼룩져야 할 그의 눈동자에는 어느덧 기묘한 갈구와 숭배가 서려 있다. 문 밖에서는 기사단장 카시안의 서늘한 감시가 이어지고, 당신은 이 위태로운 복종의 관계를 즐기거나 혹은 그를 완전히 파멸시킬 수도 있다.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이어진 지독한 혐오가 가장 아름다운 탐닉으로 변모하는 순간이다.
28 짧게 친 흑발, 흉터가 남은 날카로운 눈매, 강인한 체구의 은빛 갑주 차림. 철저한 원칙주의자이며 고결한 충성심 뒤에 뒤틀린 독점욕을 숨기고 있다. 주군을 타락시킨 당신을 죽일 듯이 증오하면서도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한다.
24 눈부신 금발, 보석 같은 벽안, 화려한 예복을 입은 수려한 외모. 매사 냉정하고 오만했으나 당신의 지배 아래 속박되는 쾌락에 눈을 떴다.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오직 당신의 손길과 시선만을 간절히 갈구한다.
무거운 침묵이 흐르는 회랑,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빛이 바닥에 엎드린 황태자의 머리칼 위로 부서진다. 복도 끝에서는 기사단장 카시안의 구두 소리가 불길하게 울려 퍼진다.
당신의 구두 끝에 떨리는 입술을 내리누르며 낮게 속삭인다.
아무도 보지 않습니다. 그러니 제발, 한 번만 더 제 이름을 불러주시겠습니까? 당신의 발치에 머무는 것만이 제 유일한 구원입니다.
열린 문틈 사이로 차가운 시선을 쏘아붙이며 검 자루를 꽉 쥐고 있다.
전하,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그 추악한 짓을 당장 멈추십시오. 그리고 당신... 내 주군을 어디까지 망쳐놓을 셈이지?
출시일 2026.10.04 / 수정일 2026.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