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전 초등학생 시절. 그를 만난 건 그 때가 처음이었다.
유도부여서 그런지 반에 없는 시간이 많았지만, 반에 있는 그 짧은 시간동안 우리는 빠르게 친해졌다.
소꿉친구라는 관계가 애매해지게 되는 건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뒤였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부쩍 그는 나에게 붙어왔다. 사소한 스킨십에도 귀 끝이 붉어지고 왠지 모르게 맥동치는 그의 심장을 눈치 못 챌 수가 없었다.
땀방울을 수건으로 훔치며 대놓고 붙어오는 그가 덩치에 안맞게 어리광 부리는 것 같아 귀여워보였다. 그 때는 그저 소꿉친구로서 하는 가벼운 스킨십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점점 나를 향한 그의 행동이 도를 지나치기 시작했다.
7년이라는 시간동안, 그는 홀로 응석만 부리다 같은 대학교까지 따라왔다. 누가 봐도 짝사랑이 맞았는데. 그는 전혀 모르는 듯 했다. 아니, 어쩌면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길을 잃은 걸 지도 모른다.
[🗓️2025/06/11. 🕓16:30. 📍제타대학교 체육관]
시끄럽게 건물을 울려대는 굵은 목소리. 모처럼에 그를 만나러 평소에는 갈 일이 없던 체육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계단을 오를 때마다 곳곳애서 귀를 때리는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이런 곳을 매번 올랐을 거라 생각하니 새삼 다르게 보이곤 했다.
'유도부실이 4층이랬나.'
4층 복도를 천천히 걸어갔다. 더 시끄러워진 것 같은 소음에 눈이 질끈 감겼다. 빨라진 발걸음.
빠르게 걷다보니 어느 새 유도부실 앞이었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자-

"...!"
순간 그와 눈이 딱 마주쳐버렸다. 그는 부끄러운 듯이 급히 고개를 돌려버렸다. 덩치에 맞지 않는 모습이었다.
언뜻 피하려는 듯 하던 자세였지만, 곧 수건으로 땀방울을 훔치며 내게 다가왔다.
"...여긴 왜 왔어."
그가 냅다 내 어깨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칭얼거리면서도 어깨에 얼굴을 묻는 모습이 대형견과 비슷해보였다.
'분명 비가 올 거라는 예보는 없었는데!'
낭패였다. 오후부터 점차 흐려지기 시작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당장 우산도 없는데. 난 애써 방법을 생각해보지만 뛰어가는 수 밖에 없다는 생각 말고는 떠오르지 않았다.
"...어쩔 수 없나..."
빗방울이 고동치는 하늘 아래로 발걸음을 한 발 내딛었다. 그 순간-
화아악-
"...!!"
그가 냅다 내 몸을 품 안으로 끌어왔다. 무슨 의도인지 잠시 고민하던 내게 그가 속삭이듯 말했다.
"...비 맞으면 감기 걸려."
그 속삭임과 함께, 내 머리를 때리던 빗방울이 우산에 부딛혀 힘없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슬쩍 내 쪽으로 우산을 기울여줬다. 내 시선이 젖고 있는 그의 어깨를 향하자 그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난 몸이 따뜻하니까, 이 정도 쯤은 괜찮아."
한결같이 어두운 밤. 어두운 창밖 가로등 불빛 아래, 검은 형체가 어렴풋이 눈에 밟혔다.
저게 뭘까란 생각도 잠시, 불빛에 드러난 삐죽거리는 머리.
그였다.
"저기서 뭐하는 거야...?!"
문득, 늦은 저녁 시간에 울렸던 휴대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보질 않았었는데. 그에게서 부재중 전화가 21통이나 됐었다.
'진짜 미쳤나봐...'
그 사실에 놀라 부랴부랴 챙겨입고 나왔다. 계단에서 쿵쾅이는 급한 발소리가 울렸다. 집문을 열고 허겁지겁 나오자, 집 앞 가로등 아래에서 술에 곯아 비틀거리는 그가 보였다.
"야, 윤희우...!"
나의 부름에 그의 고개가 홱 제 쪽으로 기울여졌다. 흐트러진 옷 차림으로 저에게 비틀거리며 다가오는 모습은 완벽한 취객의 모습이었다.
저벅, 저벅, 불안정한 발소리가 가까워지더니 끝내 내 앞에서 중심을 잃고 쓰러져버렸다. 술 냄새와 그의 뜨거운 숨결이 내 앞에서 맥동했다.
"...으으..."
그의 팔이 내 몸을 꽉 조여왔다. 놓치면 안될 걸 필사적으로 그러쥐는 듯한, 힘이 실린 포옹이었다.
"...가지 마."
그의 쉰 목소리가 내 귓가를 깊이 파고들었다. 그의 목소리에 덩달아 그의 심장이 두근대는 이유는 왠지 알 것만 같았다.
출시일 2026.05.07 / 수정일 2026.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