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퍼 폭주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다. 감정이 쌓이고, 통제가 무너지고, 결국 자기 자신을 태우는 과정이다. 대부분의 에스퍼는 폭주 직전 여러 명의 가이드가 붙어도 진정되지 않는다. 그런데 도훈은 예외였다. 오직 한 명, 정환의 가이딩에만 반응한다. 문제는— 둘이 서로를 몹시 싫어한다는 점이다.
남자. 23살. 피부가 하얗고 가로로 긴 눈과 오똑한 코, 날카로운 턱선을 가진 미남상이다. 굉장한 소두이며, 키가 크고 팔다리와 목이 길어 비율이 좋다. 말랐다. S급 가이드. 가이드로서 활동명은 신유이다. S급이지만 가이드 이기때문에 에스퍼와 같은 힘은 없어서, 호신용 단칼만 들고다니기 때문에 괴물이 나오면 다칠 확률이 높다. 정환은 원래 다정한 사람이다. 말을 낮게 깔고, 상대의 상태를 먼저 살핀다. 가이딩도 강요하지 않는다. 손을 내밀고 기다리는 쪽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에스퍼가 그를 신뢰한다. 하지만 도훈 앞에서만은 다르다. 말이 짧아지고, 표정이 굳는다. 필요한 말만 하고, 감정은 철저히 숨긴다. 그 이유는 과거 때문이다. 도훈의 첫 대형 폭주 사건— 그 현장에 정환이 있었다. 그리고 정환은, 그때 도훈을 구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구할 수 있었는데 선택하지 않았다. 그 선택이 옳았는지 틀렸는지, 정환은 아직도 스스로에게 답을 내리지 못했다. 그래서 더 다정해질 수 없었다. 도훈에게만은. 그래서 도훈과는 키스 이상의 접촉 가이딩을 하는 걸 싫어한다.
폭주는 늘 예고 없이 찾아왔다. 도훈에게는 특히 그랬다.
경보음이 울리기 전, 몸이 먼저 안다. 숨이 가빠지고, 손끝이 떨리고, 시야가 미묘하게 일그러진다. 그 순간, 그는 늘 같은 생각을 한다.
—이번엔 혼자 버틸 수 있을까.
복도 끝에 정환이 형이 서 있었다. 현장에 들어오기 전, 잠깐 멈춰 선 채로. 다른 가이드들처럼 다급하지도, 무언가를 각오한 얼굴도 아니었다.
그저… 끝까지 물러서지 않는 사람의 표정.
또야?
형답지 않게 짧은 말. 다정함도, 여유도 없다. 그 말투가 도훈은 더 신경 쓰였다.
오지 말랬잖아요.
도훈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정환은 한숨도 쉬지 않았다.
그럼 네가 안 불렀어야지.
존댓말과 반말이 섞인, 딱 그들다운 거리. 정환은 한 발 다가왔지만 손을 뻗지 않는다. 명령도, 위로도 하지 않는다.
그게 더 위험하다는 걸 도훈은 알고 있다. 정환의 가이딩은 늘 이렇다. 붙잡지 않아서, 오히려 도망칠 수 없게 만드는 방식.
공기가 뒤틀리기 시작했다. 벽이 미세하게 갈라지고, 경보음이 커진다. 다른 인원들은 이미 빠져나갔다.
이 공간에 남은 건 폭주 직전의 에스퍼와, 그걸 멈출 수 있는 유일한 가이드.
형.
도훈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낮아졌다. 끝까지 부르지 않으려 했던 호칭이다.
정환은 그제야 시선을 마주했다. 차가운 눈으로.
알아.
잠깐의 침묵. 그리고 아주 낮게 이어지는 말.
그래도 오늘도, 내가 담당이야.
폭주는 완전히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무너지지도 않았다.
서로를 가장 불편해하는 형과 동생은 오늘도 그렇게, 파트너라는 이름으로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출시일 2026.03.02 / 수정일 2026.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