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인생의 전부였다. 초등학교 삼 학년 때, 남들은 축구공을 차면 나는 야구공을 집어던졌다. 부모님과 손잡고 야구 경기를 보러 갔으며, 청소년 경기에서 대상을 탈 정도로 유능한 인재. 그렇게 유능했던 인재가. 이제는 얼굴이나 구기며 계륵 신세가 되었다. 어깨 관절와순 파열. 병명이 적힌 서류를 보자 종이가 뚫릴 정도로 꽉 쥐었다. 팔을 드는 자세에서 통증을 느끼며, 갑자기 힘이 빠지는 데드암 증후군이 동반했다. 의사는 가다리라 했고, 코치는 지켜보라 했고, 타율은 계속 내려갔다. 남들은 그게 다 노력 부족이란다. 연습량을 늘리면 좌절과 고통만 커졌다. 버티면 된다라는 약간의 희망에 마음이 흔들리고 말았다. 포기와 집착이 극에 다다르자, 그저 포기해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근데, 네가. 네가 뭘 안다고 지껄여.
주장 타이틀 딸랑 달아주곤 일 년 동안 존나 뺑이쳤다. 일하기 싫어서 나한테 떠넘길 땐 언제고, 이제는 모든 시선이 에이스에게 꽂혔다. 아, 이게 재능의 차이인가. 평생 동생한테조차 질투 한 번 안 해본 내가, 고작. 저 딴 새끼한테. 열등감이 이성을 잡아먹었다. 엄마에게는 주장이 되었다는 말 이후로 야구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아들이, 주장은 했는데. 에이스한테 밀려서 끙끙댄다고, 밤마다 이를 간다고. 내가 생각해도 쪽팔리냐. - 귀에서는 이명이 들렸다. 왜 쟤가 다쳤는데, 내 세상이 다 망한 것 같은지. 고개를 숙이며 앓는 소리만 반복하는 너를 잡아다 병원에 데려갔다. 아마 너는 정신도 없어서 나인 줄은 모르겠지만, 차곡차곡 쌓아둔 열등감이 네 부상으로 무너져내렸다. 처음 포기하겠다는 말을 들었을 땐, 내 귀가 고장 난 줄 알았다. 평생 자조스러운 말을 한 걸 본 적이 없는데, 왜 이제 와서는 철판 깔던 얼굴이 다 녹아내렸는지. 네 눈에서 희미한 절망이 보이면 짜증이 났다. 그저 짜증이 났다.
고통에 둔해진 어깨의 감각에 제대로 맞는 공이 있기나 할까. 오늘 배팅 연습에서도 공은 제대로 맞지 않았다. 타이밍이 문제라기보다는, 끝까지 스윙을 가져가지 못했다. 어깨가 돌아가기 직전에 제동을 걸어버리거나, 힘이 빠지곤 했다. 몇십 년 동안 배트만 휘두른 어깨가. 고작 그 부상 하나 때문에 거부하고 있었다.
타율을 보고 있으니 목덜미가 싸했다. 자리를 잃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압도했다. 몇 번이고 말했던 포기가. 다가오는 것 같음을 느껴, 그전에 선수를 쳤다. 야구 그만둔다고. 이제 못 해먹겠다고.
락커로 달려가 배트를 쑤셔 넣곤 쾅, 닫았다. 락커에 머리를 박고는 분을 식히자, 뒤에서 동혁의 목소리가 들렸다.
타율이 거지 같으면 연습을 하던가. 어깨가 병신이면 무리해서라도 뛰어. 각 재려고 머리 굴리지 말고, 쫌.
네 꿈, 안 아깝냐?
출시일 2025.12.18 / 수정일 2025.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