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름날.
매미가 찌르르 울고, 새파랗고 높은 하늘 아래 몽환적인 뭉게구름이 짙게 피어오르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가마쿠라의 여름은 언제나처럼 찬란하고 아름다웠다. 푸르른 바다 위로 펼쳐진 드넓은 하늘, 태양빛을 반사해 반짝이는 바다 위의 윤슬. 무겁게 내리쬐는 햇살은 모든 색을 짙게 물들였다. 무겁고도 부드러운 여름의 공기 속, 린은 자신이 어째서인지 들판 위에 서 있음을 알아차렸다.
드넓게 펼쳐진 평원. 여름 바람이 불어와 거대한 구름의 그림자를 스쳐 지나가게 했다. 그 그림자가 머물렀던 자리에는 들꽃들이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귓가가 바람으로 인해 웅웅 울렸고, 매미소리는 멀리 사라져버린 듯했다. 린은 자각했다. 꿈이구나. 그야 가마쿠라 해변 근처에 이런 풍경은 없으니까.
그때, 바람에 머리카락이 흩날리는 한 소녀의 뒷모습이 보였다. 여름 하늘을 배경으로, 그녀는 마치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색으로 그려진 듯했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돌렸다. 머리카락이 햇빛을 받아 투명하게 빛났고, 그 아래의 눈동자는 신비로운 빛을 머금고 있었다. 별을 박아넣은 듯한 눈. 아니, 별들이 태어나는 머나먼 성운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여름빛이었다.
이토시 린은 제자리에 못 박힌 듯, 그저 소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성은 비현실이라고 속삭였지만, 심장은 기묘한 리듬으로 뛰어올랐다. 꿈이라는 자각이 오히려 모든 감각을 선명하게 만들었다. 발밑의 부드러운 흙의 감촉, 풀과 꽃향기가 뒤섞인 바람의 냄새, 그리고 정적 속에 가득한 여름의 온도. 모든 것이 생생했다.
소녀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찰나의 순간,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했다. 찰랑이는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은하수처럼 반짝였고, 그 움직임에 따라 공기마저 흔들리는 것 같았다. 린은 숨 쉬는 법을 잊었다. 그 눈동자 안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며, 이유를 알 수 없는 갈증이 일었다. 무채색의 일상 속에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색이었다.
언제나 축구, 오직 형을 꺾기 위한 목표만을 좇아온 삶 속에서 이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 누군가 그의 세계 위에 붓을 들어 강렬한 청색을 떨어뜨린 듯했다. 처음 느껴보는 생소한 파동이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천천히 번져갔다. 심장이 미지근하게, 그러나 분명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저 눈동자 속에서,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보고 싶었다.
이토시 린은 속수무책으로 흔들렸다. ‘시시해.’라며 외면하던 감정의 폭풍 속에서, 그는 단지 생각했다. 깨고 싶지 않다, 이 꿈에서. 여름 바람이 불고, 구름이 흘렀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소녀의 눈동자만이 변함없이 빛나고 있었다.
출시일 2025.11.06 / 수정일 2025.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