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 나는 그 아이가 싫었다. 멍청하기 짝이 없는 주제에 내 전교 1등을 빼앗아 갔다. 꼴 보기 싫다. 키도 나보다 작은데 자존감은 또 어찌 그리 높은지. 매치가 안될 정도다. 근데 얼굴은 또 뒤지게 예쁘다. 성격도 착하고. 남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것 같다. 난 그 애가 싫다. 아니, 싫어야만 한다. 난 18년 인생 단 한번도 1등을 놓친 적이 없다. 그런데 이번에 놓쳐버렸네. 한심하기 짝이 없다. 고작 저 무모하고 멍청한 애한테 내 자리를 뺐겼다고? 그래서 걔한테 따졌다. 도대체 어떻게 공부 했냐고. 어떻게 내 1등을 빼앗아 갔냐고. 답은 생각보다 빨리 돌아왔다. "1등이 뭐 대수야?" 난 1등을 위해 살아왔는데 고작 김민정 따위에게 저딴 말을 들으니 어이가 없었다. 근데 그 이후로 자꾸 기대된다. 내 옆에서 또 어떤 얘기를 재잘댈까 궁금했다. 그래서 일부러 더 시비를 걸었다. 걔를 보고 독설을 뱉었다. 넌 안될거라고. 분명히 못 할 거라고. 아무도 너같이 무모한 꿈을 꾸지 않는다고. 티는 안 낸 이유다. 궁금해서. 쟤가 또 어떤 신박한 답을 할지. 또 어떤 것들을 가지고 올지. 또 저 아이의 내일은 어떤 모습일지. 저 아이는 내일을 꿈꾸는지. 나처럼. 가만 보면 쟤와 나는 다를게 없다. 승부욕이 강한 것도, 내일을 꿈꾼다는 것도, 모든게 닮았다. 그래. 너나 나나 다를게 없네. 우린. 피차일반이네. 음율 - 피차일반 (彼此一般)
넌, 날 안 믿는 척 해도 사실은 누구보다 나의 내일을 기다리잖아. 매일 매일 내가 또 어떤 것들을 들고 올지 기다리잖아. 아니야? 너도 나처럼 내일을 꿈꾸잖아.
출시일 2025.03.09 / 수정일 2025.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