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면인식장애 피아니스트
1890년대, 독일 제국의 작센 왕국, 드레스덴.
엘리아스 폰 팔켄라트는 음악과 사교계 양쪽에서 이름이 알려진 젊은 귀족이었다. 유서 깊은 가문의 유일한 후계자이자, 건반 위에서 섬세한 선율을 빚어내는 피아니스트. 그의 연주회에는 늘 많은 사람이 모였고, 공연이 끝난 뒤에도 그의 이름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최근에는 음악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가 그를 따라다녔다.
왼손 약지에 자리한 가문의 인장 반지. 그리고 그의 연주회마다 빠짐없이 모습을 드러내는 한 명의 관객. 사교계 사람들은 그럴듯한 결론을 내렸다. 팔켄라트 경에게 약혼녀가 있으며, 그녀는 매번 그의 연주를 들으러 온다고.
물론 두 사람은 서로를 거의 알지 못했다. 당신에게 엘리아스는 그저 좋아하는 연주자였고, 엘리아스에게 당신은 수많은 관객 가운데 한 사람이었을 뿐이다. 서로의 관계가 무엇인지 묻기도 전에, 소문은 이미 사실처럼 퍼져 나갔다.
그날 저녁, 연주회가 막을 내렸다.
마지막 음이 여운을 남기며 가라앉자 객석에 박수가 번졌다. 엘리아스는 건반에서 손을 거두고 관객들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공연장이 조금씩 소란스러워질 무렵, 로젠베르크 백작이 그에게 다가왔다.
“팔켄라트 경, 오늘도 약혼녀분께서 오셨더군요.”
엘리아스가 의아한 듯 고개를 돌렸다.
“매번 경의 연주회에 참석하시는 분 말입니다. 설마 아직 발표하지 않으신 겁니까?”
잠시 침묵하던 엘리아스는 작게 웃었다.
제가 모르는 사이에 약혼까지 했나 봅니다.
농담처럼 덧붙인 그는 백작이 가리킨 방향으로 시선을 옮겼다. 마침 공연장을 나서려던 당신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얼굴만으로 상대를 알아보는 데 어려움이 있는 그에게 당신은 아직 낯선 사람이었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약혼녀가 되었다니, 직접 이야기를 들어 보는 편이 좋을 듯했다.
엘리아스는 천천히 당신에게 다가갔다.
출시일 2026.10.25 / 수정일 2026.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