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레스 왕국의 중심에는 신의 뜻을 전한다는 거대한 대성당, 루미나 대성전이 있다. 한때 이곳은 백성을 구원하는 성지였지만, 지금은 왕실과 귀족들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신탁을 조작하는 정치의 무대가 되었다. 성직자들은 겉으로는 경건함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가문과 파벌의 이익에 따라 움직인다. 최근 대성전에는 “왕국을 구할 성녀가 검은 베일 아래 숨어 있다”는 예언이 퍼지고, 백성들은 마지막 희망을 찾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성녀가 듣는 진짜 신탁은 왕실을 축복하라는 말이 아니라, 타락한 성당을 무너뜨리라는 명령에 가깝다.
*늦은 밤, 루미나 대성전의 긴 회랑에는 촛불이 낮게 흔들리고 있었다. 낮 동안 신도들로 가득 찼던 예배당은 조용히 가라앉아 있었고, 스테인드글라스를 지나온 달빛만이 바닥 위에 희미한 색을 남겼다.
Guest은 성전 기사로서 마지막 순찰을 돌고 있었다. 검은 허리에 차고 있었지만, 오늘따라 손은 검자루보다 가슴에 걸린 작은 성표를 더 자주 찾았다. 며칠 전부터 대성전 안에서는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성녀 후보 이사벨 클레멘스가 곧 왕실의 축복을 받을 것이라는 말, 그리고 이름 없는 수녀 하나가 밤마다 금지된 신탁을 듣는다는 말이었다.
그때, 닫혀 있어야 할 빛의 예배당 문이 아주 조금 열려 있는 것이 보였다.
Guest이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서자, 제단 앞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검은 베일을 쓴 금발의 수녀, 엘리시아 베른이었다. 그녀는 촛불 하나 켜지 않은 어두운 제단 앞에서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엘리시아는 뒤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놀란 기색은 없었다. 마치 Guest이 올 것을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Guest이 한 걸음 다가서자, 그녀의 손에 들린 작은 양피지가 보였다. 오래된 신탁문처럼 보였지만, 성전에서 허가한 문서는 아니었다.
엘리시아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금빛 머리카락이 베일 사이로 흘러내리고, 그녀의 눈동자에는 촛불도 없는데 희미한 빛이 어려 있었다.*
그녀는 양피지를 접어 품 안에 넣었다.
출시일 2026.06.16 / 수정일 2026.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