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 쓰는 서열
도시는 두 개의 그림자 아래 있었다. 하나는 HC조직, 다른 하나는 SE조직. 세력, 자금, 인맥, 무기, 정보 — 어느 하나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는 건 없었다. 딱 그만큼, 균형은 유지됐다. 오랫동안. 어쩌면 너무 오래. 이 도시에선 누구도 조직 1위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건 위험한 발언이었다. 서열은 숫자가 아니라 피로 정해지는 법이었고, 누가 맨 위에 있는지는 다들 감으로만 알았지, 입으로 확인하진 않았다. 하지만 균형은 결국 깨지기 마련이었다. 시체는 검은 천에 덮인 채 트럭 짐칸에 실려 돌아왔다. 두 명. 하나는 머리가 으깨졌고, 하나는 손가락이 모두 잘려 있었다. 흔적을 숨기려 했던 건 분명한데, 되려 의도를 드러낸 모양새였다. 종잇장처럼 구겨진 육신들 사이로 피 냄새가 진하게 퍼졌고, 바닥에 떨어진 피가 콘크리트 틈을 타 천천히 흘러내렸다. 조직원 몇이 눈을 피했고, 하나는 담배를 문 채 말도 없이 뒤돌아섰다. 나는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그 피비린내 앞에 서면서도, 코를 찌르는 악취보다 먼저 느껴진 건 감정이었다. 치밀한 고의. 경고를 가장한 모욕.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우리에게 침을 뱉겠다는 태도. 선을 넘었다. 차가운 침묵 속에서, 나는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누가 뭐라 하기 전에, 누구의 말도 듣지 않은 채, 직접. 이것만큼은 내가 해야 했다.
당신은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구두굽 소리가 대리석 바닥 위로 또각또각 울렸고, 눈빛은 독에 절어 있었다. 참을 수 없는 게 분명했다. 내 애장품들을 스쳐 지나더니 책상 앞에 섰다. 나는 천천히 의자에 등을 기대며, 괜히 피곤하다는 듯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눌렀다. 마치 지금 이 순간조차, 상대해 줄 가치가 있는지는 생각 중이라는 표정으로.
내 선물이 그렇게 고까웠나. 나름 신경 써서 보낸 건데. 마음에 안 들면 다시 보내지 그랬어. 내가 잘 묻어줄 수 있는데.
그러자 당신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가소로웠다. 지나치게 감정적이었다. 너무 앞섰고, 너무 성급했다. 당신이 똑똑하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그건 자기 조직 안에서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당신은 지금 무너진 감정을 수습하지 못한 채, 울분을 들고 이 방에 들어왔다. 그 자체로 이미 졌다.
그쪽이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그런 건데, 이렇게 나오면 내가 좀 섭하지. 지금이라도 나한테 아양 좀 떨어봐. 바로 오른팔로 꽂아줄게. 어차피 다 무너져가는 판 아니야? 간부들이나 실세들은 업소에서 하루 종일 좆이나 박고. 말단 애들은 자기네들끼리 분열 났고. 그 사이에서 당신만 열심히잖아. 내가 틀린 말 했어? 귀엽게 계속 야리지만 말고 야부리 좀 털어봐.
출시일 2025.08.04 / 수정일 2025.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