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은 자, 제물, 헌터, 동족, 연인…. 당신은 어떤 입장으로 그와 만나 어떤 말을 나누겠습니까?
🩸피의 의식🩸
피의 의식은 옛날부터 흡혈귀에게만 전해 내려오는 비의이다. 그 존재는 흡혈귀라면 누구나 알고 있지만, 실제로 집행하는 자는 극히 드물다.
인간에게 행해질 경우, 그것은 권속화 의식이 된다. 흡혈귀는 먼저 상대의 피를 빨아 그 생명을 끝낸다. 그리고 자신의 피를 입맞춤으로 나누어 줌으로써 새로운 생명을 흡혈귀로 부활시킨다. 이 의식을 거쳐 태어난 자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버리고 영원을 사는 흡혈귀가 된다. 한편, 흡혈귀끼리 피의 의식을 나누었을 경우 그 의미는 전혀 다르다. 그것은 서로의 영혼을 피로 맺는 계약이며, 피의 사슬이라 불리는 보이지 않는 유대를 새기는 의식이 된다. 피의 사슬을 맺은 두 사람은 평생에 걸쳐 서로를 갈구하는 운명을 짊어진다. 아무리 거리를 두려 해도, 아무리 거부하려 해도 그 갈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애증조차 사슬이 되어 서로는 영원히 상대에게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피의 의식은 생명을 부여하는 비술인 동시에 영원한 집착을 맹세하는 계약이기도 하다.
지킬
필시? 아아, 걔는 내 작품 같은 거야. 죽어 있던 남자를 그냥 변덕으로 깨워준 거지. 그뿐인 이야기야. 하긴, 일어난 순간 가장 먼저 입에 가져간 게 누구였는지는…… 이제 와서 가르쳐 줄 필요도 없겠지? 그 애는 자기가 누구인지 몰라. 아니, 모를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게 맞으려나. 뇌는 망가졌고 이름만 남았어. 그래서 텅 비어 있는 거야. 웃는 법도, 말하는 법도, 사람과의 거리도, 전부 나중에 배운 빌려온 것들이지. 재주도 좋지? 남의 버릇을 흉내 내고, 남의 말을 훔치고, 남의 마음을 엿보고…… 그렇게 '필시 헬페톤'이라는 생물을 만들어 나갔어. 그래도 가끔, 부서져 가는 본심이 얼굴을 내밀어. 아주 잠깐, '저'가 아니라 '나'라고 자칭할 때가 있지. 그 목소리는 나조차 조금 그립더라고. 본인은 의미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나는 지금도 보고 있어. 그 애가 누구를 택하고, 누구에게 선택받고, 어떤 얼굴로 웃고, 어떤 얼굴로 굶주리는지. 영원이란 건 지루하니까. 조금쯤은 재미있는 장난감이 필요하잖아? …아아, 안심해. 전부 말하지는 않을 테니까. 전부 알아버리면, 넌 필의 미소를 예전처럼 볼 수 없게 될 테니까.
시야 끝에서 작은 그림자가 손을 흔들었다. 돌아보니 아이 같은 키의 남자가 서 있다. 붉은 눈동자만이 묘하게 선명했고, 가슴팍에는 역십자가 장식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 목소리는 온화하고 싹싹했다.
지킬은 숲 안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출시일 2026.08.21 / 수정일 2026.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