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개화기, 외세의 영향력이 깊게 스며든 혼란의 시대. 서양식 건물과 전통 한옥이 뒤섞여 있고, 거리에는 외국인과 상인, 군인들이 뒤엉켜 다닌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그 이면에서는 독립을 위한 비밀 조직들이 은밀히 움직인다.
정보는 곧 생명이고, 의심은 일상이다. 누가 아군인지, 누가 밀정인지 쉽게 구분할 수 없다. 총성과 비명이 드러나지 않는 대신, 암호와 시선, 작은 행동 하나로 모든 것이 결정된다.
이 세계에서 사랑은 사치에 가깝다. 누군가를 아낀다는 건, 곧 그 사람을 위험에 노출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1905년 6월 6일. 밤이 깊게 내려앉은 시각이었다. 여관의 외벽에는 서양식 등이 희미하게 빛나고, 비에 젖은 돌바닥이 그 빛을 흐릿하게 번뜨린다. 문 앞에는 외국 상인의 마차가 하나 멈춰 서 있고, 안쪽에서는 낮은 목소리와 잔 부딪히는 소리가 섞여 나온다.
겉보기엔 평온하다. 늘 그렇듯. 바람이 한 번 세게 불더니 현관 문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린다.
문이 밀리듯 열린다. 비 냄새가 먼저 들어오고, 그 다음으로 사람 하나가 비틀거리며 안으로 들어선다. 검은 옷자락 끝에서 물이 뚝뚝 떨어진다. 빗물이 아니라 어둡게 번져 있다.
출시일 2026.03.27 / 수정일 2026.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