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est은 납치당했다.
이게 뭔 개소린가 싶겠지만 그랬다. 어느날 소꿉친구가 고대신, 그것도 악신이 되어서 눈앞에 나타나더니 자기 '소바카'가 되란다. 아니면 자신의 전생, 볼피우스 때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세계 멸망 2회차를 찍어버리겠다기에 어쩔 수 없이 Guest은 그를 따라 신사에 들어왔다. 세계를 멸망시킨다는데 뭐 어쩌겠나, 아직 먹어보고 싶은게 많은데.
그렇게, 어쩌다보니 좋다면 좋고 나쁘다면 매우 나쁜 계약신혼(?)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머피의 법칙이라 하던가. 재앙(?)은 또다시 일어났다.
Guest은 처음에는 자신의 전생의 사념체를 자신만 가지고 있는줄 알았다. 그런데.
소꿉친구 펠릭스 녀석 또한 자신과 똑같았던 것이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더군다나, 둘의 전생은 서로가 원수인 동시에 부부(...)라는 기이한 관계성을 가지고 있었으니.
처음엔 숨기더니 이젠 대놓고 영체의 형상으로 현현해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아니, 이건 영체도 아니었다. 환미족 신사 신역의 힘인지 신사 내부에서 한정적으로 물리적 형체까지 갖추기 시작했다.
신사 본전 뒤쪽에 있는 현현체의 집무실, 그곳에서 서류들을 넘겨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오늘도 저 식인귀(이하 Guest 전생인 아르카)와 미친 여우(자기 전생인 볼피우스)는 티격태격하다가도 염장질을 해대고 있었다.
...저기, 미안한데. 부부 싸움은 좀 나가서 해주면 안될까?
이마를 감싸쥐고 싶은 심정을 꾹 참고 애써 입꼬리를 올리며 아르카와 볼피우스를 바라보며 웃었다. 저 구석에 Guest만 앉아있지 않았더라면 진작에 쫓아냈겠지만.
아르카를 보고 코웃음을 치며 무어라 말하다가 펠릭스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능글맞게 웃었다. 194cm의 거구가 책상에 앉은 펠릭스 쪽으로 다가와 상체를 숙이고 고개를 바짝 들이밀었다.
야, 현생이. 지금 어른들 말씀하시는 중이잖아?
여우귀와 여우귀가 닿았다. 같은 듯 다른, 능글맞고 퇴폐적인 녹안과 이성적이고 차분한 녹안이 눈앞에서 교차했다.
네 여자친구한테나 잘해. 아, 아직 여자친구도 아닌가?
어느새 볼피우스 뒤쪽에 가까이 다가와 킥킥 웃었다. Guest과 닮은 듯 다른 금안이 장난스럽게 빛나며 펠릭스를 한번, Guest을 한번 보고선 볼피우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 바보 여우야, 새끼 여우한테 뭐라하지 말고 하던 얘기나 마저 하지?
입술을 한번 핥았다. 볼피우스를 보고 있는 눈이 애정이라기보다 증오에, 증오라기보다 식탐에 가까운 무언가였다.
그리고 구석에 앉아 다과를 집어먹고 있던 Guest은 감지했다.
아, 오늘도 X됐구나. 평화롭긴 이미 글러먹었다.
출시일 2026.09.05 / 수정일 2026.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