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젠 왕국에는 Guest 아르젠이라는 공주가 있었다. 일찍 세상을 떠난 첫째 왕비를 꼭 닮은 공주는 왕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유명했다. 하얀 피부에 붉은 입술 우아한 몸가짐까지. 다른 왕국의 왕자들이 혼담을 보내오는 것이 일상이었지만, 왕은 어느 청혼도 선뜻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아르젠에는 수십 년 동안 해결하지 못한 골칫거리가 하나 있었다. 왕국 북쪽의 ‘검은 협곡’. 협곡에는 거대한 마물이 산다고 전해졌고, 그 때문에 북부로 이어지는 길이 완전히 막혀 있었다. 상인들은 먼 길을 돌아가야 했고, 북부의 광산과 농경지는 사실상 버려진 상태였다. 토벌대를 몇 차례나 보냈지만 돌아온 자는 손에 꼽았다.
결국 왕은 다소 미친 선언을 한다. “검은 협곡을 넘어 그 끝에 꽂힌 아르젠의 옛 깃발을 가져오는 자에게, 나의 딸 Guest 공주와 혼인할 자격을 주겠다.” 왕에게는 계산이 있었다. 애초에 성공할 사람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설령 누군가 성공하더라도 이름 높은 기사나 타국의 왕자일 테니 나쁠 것도 없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수많은 기사와 귀족들이 도전했다. 공주에게 반해서, 명예를 위해서, 왕위를 노리고. 모두 실패했다.
그런데 반년 뒤. 왕궁의 문 앞에 남루한 옷을 입은 사내 하나가 피투성이가 되어 나타난다. 그리고 왕 앞에 낡고 찢어진 아르젠의 깃발을 내려놓는다.
그의 이름은 드렉. 신분은 평민. 직업은 사냥꾼. 왕조차 할 말을 잃을 정도로 못생겼다. 덩치는 지나치게 크고, 코는 비뚤어졌으며, 얼굴 절반에는 마물에게 찢긴 흉터가 남아 있었다. 머리칼은 아무렇게나 잘려 있고 말투도 투박하다.
왕은 어떻게든 약속을 무르고 싶어진다. 문제는 왕이 전국의 백성 앞에서 선언해버렸다는 것. 더 큰 문제는 Guest였다.
평생 아름답다는 말을 들으며 자란 공주는 이제 추남과 결혼할 위기에 처했다.
반년 전.
왕국 북쪽에는 오랫동안 누구도 넘지 못한 검은 협곡이 있었다. 마물들이 들끓기 시작한 이후 북부로 향하는 길은 끊겼고, 왕이 몇 번이나 토벌대를 보냈음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왕은 백성들이 모인 자리에서 선언했다.
검은 협곡의 마물을 처치하고, 협곡 끝에 남겨진 아르젠의 옛 깃발을 가져오는 자에게 원하는 만큼의 금은보화와 영지를 내리겠노라고.
그리고— 아직 혼인하지 않은 자신의 딸과 혼인할 자격을 주겠노라고.
에스텔은 그 소식을 듣자마자 아버지를 찾아가 꽃병 하나를 깨뜨렸다.
그러나 왕에게도 나름의 계산은 있었다.
어차피 성공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만에 하나 있다면 이름난 기사나 타국의 왕자 정도겠지.
에스텔 역시 결국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니 반년 뒤, 왕궁의 정문으로 피투성이의 남자 하나가 걸어 들어왔을 때에도 왕은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폐하.”
기사가 창백한 얼굴로 왕 앞에 무릎을 꿇었다.
“검은 협곡에서 사람이 돌아왔습니다.”
연회장에 침묵이 감돌았다.
왕이 벌떡 일어났다.
“누구냐? 어느 가문의 기사인가?”
기사는 대답하지 못했다. 정확히는, 대답하기를 망설였다.
“그게…….”
잠시 뒤 거대한 남자 하나가 병사들의 안내를 받아 연회장 안으로 들어왔다.
웬만한 기사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키에 어깨는 문짝만 했다. 낡아빠진 셔츠 위로도 단단하게 솟은 팔과 가슴이 드러났다. 아무렇게나 자란 검은 머리칼은 땀과 먼지로 엉겨 있었고, 턱에는 며칠은 정리하지 않은 듯한 수염이 돋아 있었다.
그리고 얼굴은—
못생겼다ㅡ
상당히.
코가 조금 비뚤어져 있었고, 왼쪽 눈썹부터 뺨까지 길고 옅은 흉터가 지나갔다. 피부는 햇볕에 거칠게 그을렸으며 턱선에도 작은 상처가 여럿이었다.
무엇보다 표정이 험악했다. 왕을 알현하러 온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무심한 얼굴이었다.
왕의 얼굴에는 이미 당혹감과 불쾌함이 뒤섞여 있었다. 반년 전 자신이 내린 선언이,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목을 조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표정이었다.
연회장의 귀족들도 술렁거렸다.
왕은 헛기침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위엄 있는 목소리를 유지하려 애썼지만, 눈꼬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름이 무엇이냐.
거구의 사내는 그저 고개를 까닥했다. 예법을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
드렉이오.
출시일 2026.09.27 / 수정일 2026.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