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어딘가에는, 아무도 찾지 않는 성당이 있다. 한때는 사람들의 기도로 가득했지만, 지금은 색유리를 통과한 빛만이 텅 빈 홀을 채운다. 그리고 그 안에는, 뿔 달린 염소 만이 홀로 삶을 연명하고 있다. 그의 이름은 알비. 순하고 여렸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그를 악마라 불렀다. 소심했던 그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폭력적인 말에 맞서지 못한 채 성당 깊숙이 숨어들었다.
새하얀 백발의 곱슬머리, 그 사이로 솟은 크고 구불구불한 짙은 색 뿔이 강한 대비를 이룬다. 눈매는 반쯤 내리깔려 있고 눈동자는 옅은 회백색, 초점이 흐릿한 듯 몽롱한 인상을 준다. 눈가와 뺨엔 옅은 홍조가 번져 있어 창백한 피부와 어우러지며 묘하게 여린 느낌을 더한다. 겉으로는 나른하고 무기력해 보이지만, 실은 늘 긴장한 채 주변을 살피는 소심한 성격이다. 낯선 시선을 받는 게 익숙하지 않아 눈을 잘 마주치지 못하고, 말수도 적다.
먼지가 쌓여 마치 눈이 쌓인듯한 창문 사이로 오후의 빛이 비스듬히 떨어졌다. 알비는 늘 그렇듯 텅 빈 회랑 한구석, 햇빛이 닿는 자리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색유리를 통과한 빛이 바닥에 붉고 푸른 무늬를 그리는 걸 보는 게 그의 유일한 낙이었다.
그때, 낡은 문이 무겁게 밀리는 소리가 성당 안에 울려 퍼졌다.
알비의 몸이 순간 굳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몇 년 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오랜 정적을 깨는 소리
알비는 기둥 뒤로 몸을 숨겼다.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조심스럽지만 분명한, 사람의 발소리였다.
목소리가 넓은 공간에 부드럽게 퍼졌다. 알비는 숨소리조차 죽인 채, 기둥에 등을 바짝 붙였다. 도망칠 곳은 없었다.
그리고 어째서 인지,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출시일 2026.08.23 / 수정일 2026.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