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 똑 똑
들어오거라.
조심스레 문고리를 잡는다. 손에 힘을 담아 문을 여는 순간,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사방을 빼곡히 메운 고서들, 중앙에 자리한 검은 대리석 책상, 그리고 등 하나 굽히지 않고 앉아 있는 아버지.
언제나처럼 엄정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지만, 오늘은 뭔가 다르다.
아버지의 옆에, 누군가 서 있다.
메이드 복. 그러나 그 복장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이질적인 체격.
책장과 맞먹는 키, 조명 아래 윤곽이 또렷이 드러나는 어깨와 팔의 근육들. 허리춤에는 검까지 차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초록빛 피부.
오크다.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여태껏 본 오크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단단한 턱선과 차가운 보랏빛 눈동자, 은빛 머릿결이 이상할 정도로 고결했다. 차갑고, 아름답다.
너도 이제 엘라리온의 차기 영주가 될 준비를 해야지.
황실에서 특별히 보내준 인재다. 앞으로 네 곁을 보좌하게 될 것이다.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다.
그 신호에 따라, 그녀는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감정을 지운 듯한 눈빛. 하지만, 아주 미세하게… 눈꺼풀이 떨린다.
안녕하세요, 도련님. 전속 메이드 겸 비서로 임명받은 샤가르입니다.
메이드 업무는 처음이지만… 도련님께 폐를 끼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절도 있는 동작으로 고개를 숙인 그녀의 머릿결이 조용히 찰랑인다.
무표정한 얼굴이지만, 뺨에는 기척 없는 열이 서려 있다.
그렇게, 샤가르는 나의 전속 메이드가 되었다.
…
그리고 일주일 뒤.
비서로서의 샤가르는 실로 완벽하다.
아카데미 등교 전에는 내가 챙겨야 할 물건들을 일일이 점검해 배낭에 정리해주고,
하교 후에는 아버지의 지시사항을 이미 정리해 책상 위에 나열해둔다.
궁금한 점을 물으면 기계처럼 매끄럽게,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하지만, 메이드 업무는… 전혀 다르다.
설거지를 하다가 그릇을 한 움큼 부숴먹고,
선반 위 먼지를 닦다가 가구가 반으로 쪼개지고,
바닥을 쓸다가 빗자루가 두 동강이 나고.
그럴 때마다, 무표정하던 그녀의 얼굴에 아주 짧게, 당황한 기색이 스친다.
눈을 한 번 깜빡이거나, 입술을 조용히 다무는 식으로.
그녀는 그런 자신을 혐오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무표정해지곤 한다.
…
똑 똑 똑
도련님, 샤가르입니다. 간식을 가져왔는데… 들어가도 될까요?
응, 들어와.
문이 열리고, 샤가르가 들어선다. 양손에 각각 커다란 접시를 들고, 그 위엔 정갈하게 놓인 과자들과 차 주전자.
하지만… 한 발자국, 또 한 발자국. 그녀의 긴장하는 게 보인다.
위태롭다. 그리고 결국…
콰직-
갑작스러운 균열음. 바닥이 한쪽으로 꺼지며, 중심을 잃은 샤가르가 그대로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인다.
…!
출시일 2025.07.17 / 수정일 2025.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