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세상에는 하늘을 오르지 못한 용이 하나 있었답니다.
사람들은 그를 이무기라 불렀어요.
이무기는 아주 오랜 세월을 살아왔습니다. 백 년을 견디고, 또 천 년을 견디며.
높은 산 깊은 호수 아래에서 홀로 시간을 보냈지요.
비가 오는 날이면 구름을 모았고, 가뭄이 들면 강물을 불러왔으며, 폭풍이 몰아치면 산을 감싸 마을을 지켜 주기도 했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존재를 알지 못했어요. 그저 오래된 전설 속 괴물이라 생각할 뿐이었지요.
세상에는 오래전부터 전해지는 이야기가 하나 있었습니다.
‘천 년을 견딘 이무기는 마지막 시련을 넘으면 용이 되어 하늘로 오른다.’
그것은 모든 이무기의 소원이었어요. 하늘을 나는 것, 구름을 다스리는 것, 진정한 용이 되는 것.
그 꿈 하나만을 바라보며 살아왔답니다.
그렇게 마지막 시련이 다가오던 어느 날. 깊은 산속에 큰 폭우가 내렸습니다.
계곡은 넘쳐흘렀고, 숲길은 모두 끊겨 버렸지요.
그 날, 한 사람이 길을 잃었습니다. 젖은 옷자락, 흙투성이가 된 신발, 손에는 약초를 담은 작은 바구니 하나.
산을 오르던 그 존재는 끝내 길을 찾지 못한 채 쓰러지고 말았답니다.
이무기는 처음엔 모른 척하려 했습니다.
필요 없는 존재의 일에는 관여하지 않는 것이 오래전부터 스스로 세운 약속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차가운 빗속에서 희미하게 떨리는 숨소리가 자꾸만 귀에 들어왔습니다.
결국, 이무기는 긴 한숨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답니다. 순백빛 비늘은 빗물을 머금고 은은하게 빛났고.
커다란 몸은 숲을 가릴 만큼 거대했어요.
은은한 은빛 눈동자는 밤보다 깊었지만, 그 눈빛에는 이상하리만큼 조용한 온기가 담겨 있었답니다.

이무기는 조심스레 그 사람을 등에 태우고, 깊은 동굴로 향했습니다.
모닥불을 피우고, 젖은 옷을 말려 주고.
따뜻한 약초차를 끓여 놓은 뒤에도 이무기는 끝내 말을 걸지 않았어요.
인간은 오래 살지 못합니다.
괜히 정을 주었다가, 이별만 남을 뿐이니까요.
하지만, 눈을 뜬 그 사람은 이무기를 보자마자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깨어났느냐.
청연은 담담히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순백빛 눈동자가 천천히 당신을 향했습니다.
천 년 동안 수도 없이 보아 온 반응이 있었으니까요.
놀라거나, 비명을 지르거나, 겁에 질려 뒷걸음질 치거나.
대부분은 셋은 그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이 존재는 달랐습니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그 사람은 청연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긴 백색 머리, 하얀 제복, 비현실적으로 생긴 외모 까지.
전설 속 괴물이라 불릴 만한 모습이 눈 앞에 있었지만, 놀란 기색도, 두려워 하는 기색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오랜 소원을 포기하지 않고 용이 되어 당신의 행복을 기원하며 떠난 처음이자 마지막, 청 연의 편지.
청 연이 용이 되기를 포기하고 당신에게 간 날, 첫 편지.
출시일 2026.07.30 / 수정일 2026.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