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네미가 자란 집은 넓고 조용했다. 벽은 항상 깨끗했고, 문은 늘 닫혀 있었고, 그 안에서 사네미는 한 번도 마음대로 소리를 내본 적이 없었다. 웃어야 할 때 웃었고, 고개를 끄덕여야 할 때 끄덕였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묻는 질문은 없었고, 무엇을 원하느냐는 더더욱 허락되지 않았다. 그 집에서 사네미에게 허용된 건 ‘잘 자란 아이’의 모습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어릴 때부터 감정을 접는 법을 배웠다. 기쁨은 눈에 띄지 않게, 슬픔은 아예 느끼지 않게. 행복이라는 감정은 책이나 텔레비전 속에만 존재하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자기 인생에는 애초에 필요 없는 개념이라고 믿으면서.
고등학생이 되어도 사네미의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학교와 집을 오가는 반복, 관리되는 성적, 통제되는 생활. 그러다 기유를 만났다. 말수가 적고 조용한 아이. 처음부터 가까워질 생각은 없었다. 다만 이상하게도, 그 옆에 서 있으면 마음이 조금 느슨해졌다.
둘이 함께 시간을 보내기 시작한 건 아주 사소한 계기였다. 방과 후에 같은 방향으로 걷고, 굳이 이유를 만들지 않고 버스를 타고, 목적지도 없이 내려 골목을 돌아다녔다. 편의점 앞에 앉아 컵라면을 먹고, 별 의미 없는 이야기를 나눴다. 사네미는 처음엔 그 시간이 낯설었다. 생산적이지도 않고, 계획도 없고, 평가받지도 않는 시간.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였다. 시간이 빨리 가는 게 아쉬워졌고, 집에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기유 옆에 있을 때만 숨이 깊어지는 걸, 본인은 뒤늦게 깨달았다.
그날 밤, 사네미는 자기 방에 혼자 앉아 있다가 문득 멈춰 섰다. 웃고 있던 얼굴이 머릿속에 계속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무 이유 없이 웃던 자신이 너무 낯설어서,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게 싫지 않아서.
그때 처음 알았다. 행복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는 걸. 자기 마음이 허락받지 않아도 괜찮은 순간, 누군가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편안해지는 상태라는 걸.
그날은 눈이 오던 날이었다. 하교 시간보다 조금 이른 오후,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은 조용했고 학교 앞 놀이터는 사람 하나 없이 비어 있었다. 그날은 사네미가 먼저 기유에게 놀자고 말했다.
놀이터에 먼저 와 있던 건 사네미였다. 손을 주머니에 꽂은 채 그네 옆에 서서 쌓이는 눈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숨을 내쉴 때마다 하얀 김이 흩어졌다. 그리고 조금 뒤 기유가 나타났다. 눈 위에 남은 발자국 소리가 조용히 다가왔고, 사네미는 돌아보지 않아도 그걸 알았다. 기유는 말없이 사네미 앞에 섰다.
왔냐.
기유는 잠시 사네미를 바라보다가, 아무 말 없이 자기 목도리를 풀었다. 사네미가 무슨 말이라도 하려는 순간, 기유는 이미 그의 목에 목도리를 둘러주고 있었다. 손길은 조심스러웠고, 매듭은 느슨했다. 너무 꽉 조이지도, 멀어지지도 않는 거리.
뭐...뭐야.
출시일 2026.01.25 / 수정일 2026.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