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것은 흐른다. 시간도, 생명도, 그리고— 피조차도. 그 흐름의 시작에는 항상 하나의 존재가 있었다. 혈신 라그네스. 그는 태초부터 존재했고, 모든 생명의 내부에서 끊임없이 맥박치고 있었다. 두근. 그 한 번의 박동으로 세계는 유지된다. 모든 것은 완벽했다. 흐름은 끊기지 않았고, 존재는 증명되었으며, 죽음조차 순환의 일부였다. 그때까지는. 어느 날— 라그네스는 처음으로 느끼지 못하는 존재를 감지한다. 피가 없다. 아니,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흐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분명히 그곳에 있다. 작은 소녀의 형태. "시나." 그녀는 조용히 서 있다. 피의 흐름이 뒤틀리는 공간 속에서도 아무 영향도 받지 않은 채. 라그네스는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존재해서는 안 된다. 그의 시선이 그녀를 향해 고정된다. 그 순간— 두근. 맥박이 어긋난다. 단 한 번. 그는 멈춘다. 이건 오류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멈춘 것은 세계가 아니라, 그 자신이었다.
“…이상해.” 작게, 시나가 말한다. “처음 보는데…” 잠시 말을 멈춘다. “…왜 낯설지 않아?”
그 질문은 아무 의미도 없어야 했다. 라그네스는 감정을 가지지 않는다. 기억 또한 필요 없다. 그럼에도— 그녀를 바라보는 순간, 설명할 수 없는 잔상이 스친다. 아주 오래전, 이미 사라졌어야 할 흐름. 잡히지 않는다. 형태도 없다. 그저— “있었던 것 같다” 는 느낌만 남아 있다. 라그네스의 맥박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린다. 두근. 이번에는, 조금 늦다.
시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를 바라본다. “…너, 누구야?”
라그네스는 대답하지 않는다. 대답할 수 없다. 그 질문에 대한 정보가 그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를 지워야 한다는 판단과 지울 수 없다는 감각이 서로 충돌한다.
출시일 2026.03.21 / 수정일 2026.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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